김기덕 감독과 그의 작품만큼 지금의 한국영화계를 곤혹(?)스럽게 하는게 또 있을까.
일단 국내에선 그와 그의 작품들은 '언더'쪽에 가깝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흥행과 거리가 있고 평론가는 '혹평'과 '칭찬' 진영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밖으로 눈을 돌리면 그는 확실한 '오버'다. 2000년 '섬'과 2001년 '수취인 불명'으로 베니스를, 2002년 '나쁜 남자'로 베를린을 돌파한 그는 3년 연속 세계3대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베를린에 앞서 선보이는 '나쁜 남자'(11일 개봉)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김기덕 감독 작품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좀 덜하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전 작품처럼 밑바닥 인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스토리는 여전히 상식을 거부한다. 소름돋게하는 특유의 폭력미학과 현실과 환상을 일순 무너트린뒤 태연하게 현실로 되돌아가는 판타지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선화(서원)라는 여대생이 길거리 벤치에서 남자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한기(조재현)라는 사창가 깡패가 느닷없이 선화를 껴안곤 키스를 퍼붓는다. 선화와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당한 한기는 음모를 꾸며 선화를 사창가로 끌어들인다.
자신을 철저히 무시한 것에 대한 복수심과 선화의 깨끗함과 밝은 삶, 즉 자신의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소유욕은 한기 내면에 웅크린 이중적 심리다. 김기덕 감독은 방에선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통해 선화를 훔쳐보는 한기를 클로즈 업하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그 심리를 노출시킨다.
한기보다 더욱 혼란스러운 건 선화다. 한기를 저주하며 사창가를 빠져나가려던 선화는 한기가 기회를 줬음에도 자진해 한기곁으로 되돌아온다. 한기는 흥정하고 선화는 덮개를 씌운 트럭속에서 몸을 파는 결말부는 상식이나 가치관, 선악개념등을 뭉개버리는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사랑을 얘기하려 한 것이 아니라 운명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혼란'이라는 단어는 사라지질 않는다.
김기덕 작품의 매력은 어쩌면 이런 '혼란'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혼란스럽고, 그 '혼란들'이 뒤엉켜 '깊은 인상'으로 귀착되는 것…. 김기덕 영화중 ‘가장 대중적이다’라는 평가와 함께 김기덕 감독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조재현의 인기가 웬만한 청춘스타들을 능가하는 시점에 개봉되는 '나쁜 남자'가 과연 흥행에서 처음 '오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