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은 문학지망생들에게 기쁨과 탄식이 교차하는 달입니다. 각 신문 지면마다 신년호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 때문이지요. 1년동안 정성스럽게 쓴 글들을 딸 시집보내듯이 곱게 치장시키고 신문사로 보내는 심정은 아마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창이 넓은 우체국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원고를 보낼때의 그 미묘한 떨림, 숨막히는 긴장감. 혹시 우표가 떨어지지 않을지, 또 주소는 제대로 쓰여졌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그리고 원고를 보낸 후 정확히 12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전후로 당선통보가 오지 않을까 전화기 앞에서 아무 일도 못하고 마냥 기다리지요. 전화벨소리만 나면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연락이 없으면 분명 낙선이 뻔한데도 1월 1일자 신년호에 자신의 글이 실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망상에 사로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 신문 신년호를 들춰볼 때, 낙선되었다는 좌절감으로 1월 한달은 소주를 벗삼아 절망에 빠지곤 하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신문마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발표했습니다. 순전히 당선자의 몫인 당선소감 속에는 이제 험난한 문학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작가 초년병들의 터질 것 같은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당선작보다 손길이 더 많이 갔을 당선소감이 더욱 감동적인 경우도 간혹 있지요. 온 세상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은 것처럼 그 공간속에 자신의 문학론을 펼쳐보이기도 하고, 한눈 팔지 않고 문학의 정도만을 걷겠다는 의미심장한 선언문같은 글도 눈에 띄곤 합니다. 전 당선작을 읽기 전에 늘 당선소감을 읽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망하지요. 부디 당선소감을 쓸 때의 결연한 의지가 퇴색하지 말고 오직 문학에 정진해 달라고 말입니다.
'나의 문학이야기'(문학동네 刊)는 우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문학론을 피력한 책입니다. 이제 문단의 최고봉에 서 있는 박경리를 비롯해 신경림, 이제하, 황동규, 강은교, 오정희 등 이름 석자만 들어도 친근함이 묻어나는 17명 작가들의 문학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왜 문학의 길을 택했는지, 자신들이 그동안 일관되게 추구해온 문학세계는 무엇인지 들려줍니다. 펜 하나로 문학의 대가를 이루었지만 글을 읽다보면 이들 역시 머리 위에 '작가'라는 면류관을 쓰기 전에는 누구나 똑같이 문청(文靑)이었습니다. 공사장의 불빛이 너무 슬퍼서 시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신경림, 고교시절 백일장에서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흐르는 강물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는 전상국, '빨갱이 자식'이라는 멍에를 안고 살면서 좌익혐의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풀려난 문인 L씨의 이야기를 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문구. 아름답기 이를데 없는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가 실상은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했던 고3때 쓰여졌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작가들의 자기 고백서를, 그들의 마음속에 늘 웅크려있었던 가슴 저미는 내밀한 풍경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문학에는 왕도가 없다는 것을, 문학이란 그 누구의 도움없이 손전등 하나를 의지한 채 어두운 광야를 홀로 걸어가는 것임을, 그런 연후에 자신이 원했던 목적을 달성했다손 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고 또다시 새로운 시작임을, 그리고 작가들이 발표한 작품이 비록 태작이라도 그 역시 독자가 하찮게 여기면 안되는 그들만의 지독한 고뇌의 산물임을 말입니다. 비록 17명의 작가가 서로 다른 빛깔로 문학을 얘기하지만 그들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바로 삶에 대한 '연민(憐憫)' 이지요. 자신에 대한 연민이건 타인에 대한 연민이건 그것이 그들에게 글을 쓰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글을 쓰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숙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