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게다가 날선 감수성에 밀려 허덕이던 사춘기 시절에 홍역처럼 치러낸 기억이라면 더욱 잊혀지지 않는다. 대개 이런 기억은 평생 가슴속을 떠돌며 상처에 상처를 거듭낸다. 마치 파내고 파내어도 다시 솟아나며 고통을 주는 티눈처럼….
등단 9년만에 내놓은 김성금(44)씨의 첫 장편소설 '티눈'(다인미디어)은 스무해 전의 아픈 기억으로 몸서리치며 살아온 한 여인의 이야기다. 생명이 촛불처럼 꺼져가는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스무해 전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에게 스무해 전의 기억은 그녀의 사춘기와 젊음을 빼앗아간 악몽이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단 한번의 실수가 긴 인생을 얼마나 비틀거리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은 망원경으로 건너편 산기슭을 바라보는 그녀가 본드를 마시는 여학생들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릴적부터 사건이 나던 스무해전까지의 기억을 오가며 엮어진다. 그리고 그 기억속에는 그때 함께 끔찍한 일을 치러냈던 또 한명의 친구 '은숙'이 등장하고, 또 그녀의 첫사랑 '정권'이 함께 얽혀든다. 그녀와 은숙과 정권, 그리고 또 여러명의 친구들은 모두 그 당시의 기억을 아프게 안고 살아간다. 특히 가장 끔찍한 기억을 안아야 했던 은숙과 주인공 경희는 그로 인해 창창해야할 삶이 무너져 내린다.
작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스무해전의 기억으로 인해 남자를 가까이 하지 못한 독신의 그녀에게 '자궁암'이라는 마지막 선고는 어쩌면 비틀거리는 인생에서 그녀를 건져줄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이 글을 마치면서 젊은이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란다. 내 조카나 은숙의 딸 민영이 꿋꿋하게,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살기를 바란다.”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이 말은 혼란한 세상에서 아픈 기억으로 무너지는 젊음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다.
젊음 앗아간 스무해전 '낡은 기억' - 김성금 첫 장편소설 '티눈'
입력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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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3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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