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미테러 사건 이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테러와 관련된 영화의 개봉을 미루거나 내용을 수정하는등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콜래트럴 데미지'(8일 개봉)는 개봉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테러사건이 발생하면서 개봉이 무기한 연기돼 관심을 끌었던 영화.
'전쟁이나 테러등 군사작전으로 인해 무고한 민간인이 입은 희생'을 뜻하는 '콜래트럴 데미지'라는 제목이 드러내듯 영화는 '테러'를 소재로 하면서도 주인공으로 특수요원이나 군인이 아닌 민간인을 내세웠다. 주인공은 콜럼비아 영사관앞에서 만나기로 한 아내와 어린 아들이 폭탄테러로 숨지는 장면을 목격한 근육질의 소방관 고디(아널드 슈워제네거). 미국의 내정간섭으로 콜럼비아가 내전을 겪고 있다고 확신하는 반란군 테러리스트 끌로디오(클리프 커티스)의 테러에 무고한 민간인인 고디의 아내와 아들이 희생된 것이다.
미 정부가 콜럼비아 반란군에
대한 CIA의 잘못된 정책이 테러를 불러왔다며 주춤거리는 사이 테러리스트 끌로디오는 콜럼비아로 탈출한다. 분노와 복수심에 휩싸인 고디는 자기 손으로 직접 끌로디오를 처단할 것을 결심하고 파나마를 거쳐 콜럼비아로 들어간다. 하지만 끌로디오를 살해하기 직전 오히려 반란군에게 붙잡힌 고디는 끌로디오 아내 셀레나(프란체스카 네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한다. 그 사이 끌로디오는 제2의 테러를 도모하고….
앤드류 데이비스 감독은 전작 '도망자'에서처럼 고디의 콜럼비아 잠입과 추적, 탈출등 일련의 액션신에서는 긴장감과 스펙터클을 적절히 배합, 볼거리를 제공한다. 셀러나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도 예상밖의 재미를 안겨준다. 하지만 이런 오락성은 테러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정치, 종교, 인종등의 제반문제를 동반하지 않고 있다는데서 깊이가 얕고 공허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끌로디오등 콜럼비아 반란군의 테러행위를 설명하는데 인색할뿐더러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까지 한다. '무고한 희생자'를 대표하는 고디의 분노와 복수 역시 '아픔'이나 '공감'여부를 떠나 가족애라는 틀내에 묶여있다. 결국 테러 배경을 피해간 영화에서 돋보이는건 웬만한 CIA요원보다 더 뛰어난 소방관 고디의 가족애와 영웅적인 활약상이다. 할리우드 오락영화들의 물량공세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그게 그거다'라고 느껴지는건 이처럼 깊이보다는 '영웅만들기라는 규격'에 매여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