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통상 글을 '읽고' 그림을 '보며' 음악을 '듣는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읽다' '보다' '듣다'의 동사는 특정한 목적어를 수식함으로써 서로 넘나들 수 없는 제한적 의미를 갖고 있지요. 가령 음악을 '보고' 그림을 '읽으며' 글을 '듣는다'고 하면 이는 분명 틀린 표현이 됩니다만, 그러나 이젠 이런 표현이 틀리다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장르가 급격히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랩. 랩의 기원을 지금도 저는 우리의 판소리라고 고집하고 있고, 서수남, 하청일이 부른 '팔도강산 유람하세'가 한국적 랩의 효시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랩을 '듣는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자막이 깔리지 않으면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최근 가요프로그램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자연스럽게 자막이 깔리고 우리는 화면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읽는' 습관에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음악만이 아니라 비평분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영화는 영화평론가가, 문학은 문학비평가가, 스포츠는 스포츠 평론가가 주도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각 분야의 일반 애호가들의 수준이 범상치 않아서 이들의 경계를 넘나드는 뛰어난 비평으로 인해 전문비평가들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아마추어 메이저리그전문가들이 TV 해설가들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형국이고, 영화의 경우도 전문직업을 갖고 있는 가령, 법률가, 의사, 물리학자, 법학자 등 특수직 종사자들이 나름대로의 독특한 안목으로 영화비평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기존의 영화평론가들의 밥줄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독일에서 10여년간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김용규의 '영화관 옆 철학카페'(이론과 실천 刊)는 기존 영화평론가들의 도식적인 인상비평을 뛰어 넘어서는 독특한 영화비평집입니다. 이 책은 소위 영화평론가들이 줄거리를 나열하고 감독의 성향을 소개하는 정도를 영화평이라며 독자를 업신여기는 것이 일반화되어있는 요즈음, 영화애호가들의 '영화보기' 수준이 언제 이 정도에 이르렀는가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물리학 전공자 정재승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서울대 법대 교수 안경환의 '아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을 향해 날다', 정신과 의사 김상준의 '신화로 영화읽기 영화로 인간읽기', 서울대 영문과교수 김성곤의 '영화에세이'도 순수 영화애호가들의 빛나는 저작입니다만, 이 책에서 김용규의 분석은 한단계 더 도약합니다. 해석방법이 아주 독특하지요. 철학, 인류학, 심리학, 신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지식을 바탕으로 18편의 영화속에 감춰져 있는 의미들을 해석합니다. 가령, 에리히 프롬을 통해 이창동의 '박하사탕'을 분석하고,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를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비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아물거리는 영화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창고 속에 처박아 두었던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제7의 봉인',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를 다시 보며 '아! 이런 해석은 충분히 유효하다'며 무릎을 쳤고, 즐거웠으며 솔직히 너무 통쾌했습니다. 김용규가 전문영화평론가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감독은 그런 의미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겠지만 영화를 먼저보고 이 책을 읽으면 김용규식의 철학적 해석이 전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앞으로 순수 예술 애호가들의 이런 작업이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른 예술분야에서도 꾸준히 진행되리라 믿습니다. 또 그래야만 합니다. 예술애호가들의 약진이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전문가들에게 적지 않은 자극이 될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