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블록버스터시대를 연 '쉬리'로 뼈대를 세우고 '친구' '공동경비구역 JSA' '엽기적인 그녀' '주유소 습격사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거짓말' '접속' '반칙왕' '넘버3' '간첩 리철진'등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어온 28편의 하이라이트로 살을 입혔다.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를 저지하려는 일본의 극우세력 천군파 일당이 한국에 잠입해 한국의 특수경찰 KP와 정면대결을 벌인다는 게 기둥줄거리로 임원희, 김수로, 김정은, 서태화가 각각 '쉬리'의 한석규, 최민식, 김윤진, 송강호의 캐릭터를 본땄다.
천군파의 여전사 상미(하나코)는 KP 요원 황보에게 접근하고 천군파 두목 무라카미는 부하들과 함께 액체폭탄을 한국으로 밀반입한다. 그러나 상미는 황보와 싹튼사랑 때문에 번민에 빠지고 무라카미 일행은 액체폭탄과 공작금을 잃어버려 망연자실해 한다. 남북한 정상과 일본 천황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 동북아 정세를 한순간에 바꿔놓을 운명의 시간은 차츰 다가오는데….
코믹연기 배우로 타고난 듯한 임원희, 김정은, 김수로 트리오의 능청맞은 연기, 한쌍의 톱니바퀴처럼 이가 잘 맞아 돌아가는 줄거리, 이른바 'B양 비디오'까지 끌어들여 적재적소에 짜깁기 해놓은 명장면의 절묘한 구성,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스펙터클한 화면, 관객의 기대를 기분좋게 배반하는 도발적인 비틀기 등은 시종 관객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게 만든다.
특히 대대적인 성형수술 끝에 박경림에서 김정은으로 변신한 상미가 의사에게 불만을 털어놓는 장면이나 좌우로 분할해놓은 화면이 한 화면으로 바뀌는 장면 등은 김상진 감독 밑에서 내공을 쌓은 장규성 감독의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대목이다. 종료 자막과 함께 '찍어놓고 깜박한 장면'이란 이름으로 편집에서 잘려나간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짭짤한 보너스.
그러나 대극장에 모인 한일 관객에게 상미가 훈계하는 장면이라든지 남북한 정상이 성당에 뛰어들어가 맹세하는 대목에서 '닭살'이 돋는 관객도 있겠고, 상미가 자신의 토사물을 다시 마시는 광경(엽기적인 그녀)과 KP 요원들이 피살자 항문에 손을 넣어 맛을 보는 대목(투캅스2)을 역겹게 느끼는 관객도 적지 않을 듯하다.
어쨌든 영화사 '좋은 영화'가 이름값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밌는 영화'는 제목에 그리 부끄럽지 않은 작품으로 태어났다. 단 여기에 인용된 영화를 절반도 보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다른 관객과 함께 웃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 보고 싶다면 적어도 '쉬리' '친구' '엽기적인 그녀' 정도는 비디오로 본 뒤 극장을 찾을 것. <연합>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