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안보이고 안들리고 말못하는 삼중고를 이겨낸 그 장애인? 그녀의 전기를 새삼 읽을 필요가 있나? 그녀의 스토리라면 다 아는 거 아닌가? 나 역시 그랬다. 어릴 때 다이제스트 위인전에서 그녀 얘기는 충분히 읽었다고 생각했다. 구식 펌프가 있는 우물가에서 설리번 선생으로부터 '물'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우는 광경의 삽화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일본책을 베껴냈을 게 분명한 60년대 싸구려 위인동화가 심어준 편견은 꽤 질겼다.
최옥란? 누구였더라? 아! 지난달에 자살했다는 그 장애인? 신문에서 잠깐 봤는데 안됐더구만. 그런데 그 여자 왜 죽었대? 이 정도만 돼도 사회문제에 꽤나 관심이 있는 편이다. 노점상 수입이 월 30만원이 넘으면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도 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몇 푼 안되는 통장잔고와 쥐꼬리만한 생계수급권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 30대 뇌성마비 여성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명동성당 노제가 경찰에 의해 원천봉쇄 되면서 그나마 그녀의 슬픈 삶은 언론을 탈 수 있었다. 장례를 치른지 겨우 보름 남짓이건만 장애극복조차 원천봉쇄된 삶을 살아야 했던 최옥란이라는 이름은 벌써 잊혀지고 있다.
나는 1880년생인 헬렌 아담스 켈러가 여든여덟살이 되던 1968년까지 살았다는 것을 도로시 허먼의 전기를 읽고서 처음 알았다. 나는 또 헬렌이 만약 눈을 뜬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평생소원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일'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은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도, 그녀에게 '말'을 가르친 애니 설리번 선생이 소명의식에 불타는 특수교육전문가라기 보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괴로워 하고 낭비벽과 신경질 심한 '인간적인' 인물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쩌면 헬렌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애인인 동시에 가장 행복한 장애인일 터이다. 설리번 선생의 도움으로 '언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녀는 이미 전세계 장애인의 상징이 될 운명을 부여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미국인이었고,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던 20세기 초반의 미국은 장애인 영웅도 필요했다. 그녀는 전화의 발명자 알렉산더 벨, 대작가 마크 트웨인의 두터운 애정 속에 '스타'가 되어갔다.
물론 그녀의 정신력이, 장애를 이겨낸 뛰어난 감수성이 낮게 평가되어선 안된다. 그녀는 생활고로 서커스 같은 연극무대에 서면서도 장애인을 위하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곤 했다. 그녀는 또한 맑은 영혼으로 세상의 평화를 외쳤고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녀를 장애영웅으로 띄운 매스컴이 그녀의 사회적 메시지는 철저히 무시하긴 했지만.
헬렌은 시각과 청각장애에도 불구하고 건강했다. 그녀는 결혼과 출산을 원했지만 금욕적인 어머니와 설리반 선생의 틈바구니에서 연애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딱 한 번, 팬을 자처하는 남자와 야반도주하기로 약속하지만 끝내 결행하지는 못한다. 최옥란씨에겐 아홉살난 아들이 있었다. 그녀는 이혼한 남편이 데려간 아들의 양육권을 되찾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럴 능력이 없었다.
최옥란씨만이 아니다. 이 땅엔 가난과 장애의 이중굴레에 갇힌 장애인이 많다. 그들은 헬렌처럼 자신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기엔 너무 무기력하다. '고요한 밤의 빛이 된 여인' 헬렌이 만약 살아서 이들의 얘기를 듣는다면 뭐라고 할까. 헬렌 켈러의 전기를 다시 꺼내 들춰보며 그 대답이 궁금하다. 마침 낼 모레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