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강사로 연예지상주의자인 준영(감우성). 섹시한 조명 디자이너 연희(엄정화). 소개팅에서 만난 두 남녀는 3차 술자리 끝에 '왔다갔다하는 택시비보다 여관비가 더 쌀 것 같다'는 준영의 제안에 의기투합, 첫 만남에서 잠자리를 같이 한다. 두 남녀의 만남은 계속되지만 결혼은 아니다. 둘이 잠자리를 같이 한 건 서로가 서로를 결혼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결혼 대상을 조건 좋은 남자로 선택한 연희는 결국 돈 잘버는 의사와 결혼한다. 하지만 연예의 대상은 준영이라고 생각하는 연희는 준영에게 옥탑방을 얻어준다. 결혼제도에 구속되고 싶지 않은 준영과 자유와 안락한 가정을 동시에 꿈꾸는 연희간의 만남은 한주 걸러 주말마다 이뤄지고…. 과연 이들의 만남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결혼은, 미친 것이다'(26일 개봉)는 연희와 준영을 앞세워 결혼생활의 허구적 단면을 파고든다. 하지만 심각하거나 메시지가 강한 영화는 아니다. 이만교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지식인의 허위의식과 냉소, 시니컬한 농담, 사실적인 연출 등을 적절히 섞어가며 결혼제도의 상투성을 뒤틀고 딴죽걸고, 그렇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결혼식 첫 장면이 대표적인 예. 신부 대기실에서 수다를 떠는 친구들. 하객들의 판에 박은 덕담, 예식장 로비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꼬마들의 장난, 어머니들의 성화, 소개팅을 조건으로 사회를 보는 준영…. 결혼제도를 바라보는 유하 감독의 시선이 확연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결혼제도에 대한 판단은 결국 관객들의 몫이지만 영화 곳곳에서 '맞아'하며 무릎치는 일까지 부정하긴 힘들다.

탤런트 생활 11년만에 영화에 진출한 감우성과 '마누라 죽이기'의 단역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에 도전한 엄정화는 두사람만의 힘으로 104분의 러닝타임을 별문제 없이 이끌어간다. 엄정화는 몸을 아끼지 않는 노출연기도 보여준다. 유하 감독은 지난 93년 자신의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직접 스크린으로 옮긴 이후 10여년만에 두번째 영화를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