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성계는 여성정책이 서서히 뿌린 내린 해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01년이 여성부 출범과 함께 한국 여성사의 '제2의 원년'이었다면 2002년은 이를 바탕으로 정부의 여성정책이 서서히 뿌리를 내린 해라는 것이다.

지난해 모성보호법이 국회를 통과, 여성권익 신장을 위한 제도적 초석이 다져진 것을 계기로 올해 정부 차원에서 공보육의 얼개가 마련되기 시작했고 여성계의 숙원인 호주제 폐지를 위한 움직임도 보다 맹렬히 진행됐다. 올해 여성계 움직임을 이슈별로 정리해 본다.

▲공보육 이행계획 본격 추진

연초에 여성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간에 '보육정책 종합대책'이 마련되면서 그동안 민간이 떠맡아왔던 보육에 국가가 직접 개입한다는 공보육 대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아동보육료 수혜대상(0~5세)을 현재 14만명에서 2006년까지 40만명으로 늘리고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보육시설을 크게 확충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

그러나 이같은 정부 방안은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가구소득에 따른 차등보육제 도입 등 여성단체들이 줄곧 요구해 왔던 대책들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돼 시행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과제로 남아 있다.

▲호주제 폐지 움직임

2007년까지 호주제를 폐지하겠다는 여성부의 방침 아래 여성·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호주제 폐지 움직임이 곳곳에서 활발히 진행됐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거리행진과 전국 10개 지역을 순회하는 호주제 폐지 캠페인을 벌인 것을 비롯해 평등사랑변호사모임 등 민간단체들의 호주제 개선안 토론회 등으로 적극적인 여론몰이가 이뤄졌다.

▲제2차 여성기본계획 마련

가족간호휴가제 도입, 가족단위 호적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2차 여성정책기본계획(2003~2007년) 확정안이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보고됐다. 이에 따라 가족이 병에 걸렸을 때 간호를 위해 휴직할 수 있는 선진국형 제도인 '가족간호 휴가제' 도입이 검토되고 부부와 자녀 등 가족구성원 모두가 법률적으로 동일한 지위를 부여받는 '가족단위 호적제' 마련이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또 '부부재산제' '양성평등채용목표제' 도입 등도 계획안에 포함돼 있다.

▲대선여성연대 발족

대선을 앞두고 지난 10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후보 검증을 위한 '2002 대선여성연대'를 발족, 대선공약 검증, 주요 과제 공약화 요구, 후보여론조사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대선 후보 검증을 위해 여성계가 연대를 구성, 활동에 들어간 것은 최초의 일로 여성 유권자들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 인신매매 실태 논란

미 국무부가 지난 6월 작성한 '세계 인신매매 실태보고서'에서 한국이 최상위인 1등급을 받은 것을 놓고 미 의회 의원들이 일종의 '이의'를 제기하면서 한국의 정확한 인신매매 실상이 이슈화됐다. 한국이 1등급 국가에 포함된 것은 한국 정부가 인신매매 실태에 대한 정확한 조사 없이 과장된 답변을 했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한국 인권단체 관계자들을 의회 청문회에 직접 출석시켜 정확한 답변을 들어야 한다고 미 의원들이 주장했던 것.

이런 가운데 지난 10월 필리핀 정부가 기지촌 일대에서 감금 및 성매매를 강요당한 자국 여성을 위한 손해배상소송을 한국 법원에 제기한 사건이 발생, 한국의 인신매매 실태가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면서 결국 범정부 차원에서 '인신매매 근절대책'이 검토되기에 이르렀다.

▲장상 총리서리 인준 부결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을 모았던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결국 '인준'의 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자 여성계의 낙심도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장 전 총장이 총리로서 국정수행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기보다 남성 중심의 정치판에서 여성으로서 희생된 면이 없지 않았다는 '자조 섞인' 평가 속에서 이를 계기로 남녀를 불문하고 총리자격 검증에 대한 보다 정확한 잣대가 마련돼야 한다는 성찰도 잇따랐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