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바이러스를 심은 거죠.” 여기는 안양의 퇴락해 가는 재래시장인 석수시장이고, 바이러스를 심었다는 사람은 '스톤앤워터(Stone&Water)'의 박찬응(44·아침미디어)대표다. 뭔가 '있어 보이는' 스톤앤워터라는 이름은 고상한 미술계와 천리나 떨어져 있는 듯한 석수시장의 석·수(石·水)를 따온 말. 지금까지 듣도보도 못한 '서플러먼트 스페이스(supplement space)'를 내세운 전시공간이다.

스톤앤워터는 지난해 6월 개관했다. 아직 만 1살도 되지 않은 21평의 작은 공간이다. 하지만 지난해 2건의 전시, '리빙 퍼니처'와 '재건축 프로젝트-서울에서 가장 살기좋은 곳 잠실동, 안양의 명당 석수동'만으로 우리 미술계에 도발적 화두를 던졌다. '작품이 무엇이고 상품이 무엇인가?' '예술이 무엇이고 생활이 무엇인가?'.

-대안공간이라는 말이 이미 있는데 서플러먼트 스페이스라는 낯선 단어는 뭔가.

“기존 대안공간은 서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안이 될 수 없다. 문화의 서울집중을 비판하면서 3개 대안공간이 인사동(사루비아다방, 풀)과 홍대앞(루프) 등 이른바 '목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또 대관료를 받으면서 작가의 작품 판매는 등한시한다. 스톤앤워터는 침체된 곳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에서 보충이고 대리다. '진정한 대안이 뭐냐'에 답하고 싶다. 새로운 문화는 변두리 지역에서 꽃피는 것을 보여줄 거다.”

-21평 공간에 270여명 작가의 작품을 넣은 '리빙퍼니처'전은 2002년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로 손꼽혔는데.

“전시기획 자문을 맡고 있는 류병학씨가 전적으로 맡아서 진행했다. 그가 던진 원초적 질문은 '무엇이 작품이고 무엇이 상품인가'이다. 실제로 상품과 작품이 뒤섞여 있었는데 관람객은 전시를 보면서 상품과 작품을 구별하지 않았다. 류 선생은 '작품이 상품이다' '상품이 작품이다'고 말한다. '작품도 상품이다'가 아니다. 예술이 언제부터 예술인가? (지금처럼 생활과 유리된 지)100년도 안됐을 거다. 탱화, 도자기 모두 생활이었다. 미술이 미술의 고향인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지난해 6월 개관전으로 치른 '리빙퍼니처'(6월16일~8월16일)는 신문·방송 등 전국 40여매체를 장식했다. 500원부터 상당액수에 이르는 전시작 300여점이 팔렸고, 아마추어에 불과했던 김미진씨 등 참여작가 3명이 이 전시를 계기로 미술계에 데뷔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언론의 집중포화로 장소와 편의시설이 전무한 곳을 2천여명이 다녀갔다. 하지만 의미상 그에 못지 않은 '재건축프로젝트'전(11월16일~12월15일)은 고작 200명이 찾았다.”

-관객이 10분의1로 줄었는데 재건축프로젝트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전시아닌가.

“자체 기획전은 아니었다. 하지만 윤현옥씨 기획이 매우 참신했다. 곧 헐릴 낡은 아파트 한 채를 고스란히 공간에 재현했는데, 벽지 등 모든 것을 뜯어오고 폐기물로 꾸몄다. 사람이 떠나간 곳의 흔적, 삶의 폐허를 그대로 느끼게 하는, 진짜로 '썰렁'한 전시였다. 당시 폐기물을 재활용한 손성진씨의 '부자되세요' '복돼지' 등 5점이 팔렸다. 손씨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자기작품의 가격을 매겨왔다. 그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소수가 독점하는 '그들만의 시장'이 아닌 새로운 미술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스톤앤워터는 올해 '쇼핑전'을 연다. 석수시장내 빈 점포를 활용하거나 임대해 7개의 명품관을 여는 것이다. 대중보다 높이 있으려는 '미술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좋은 상품(명품)을 파는 점포다. 영상·애니메이션 등 소프트웨어를 파는 비디오방, 책방, 금은방, 옷방 가구방, 도자기방, 판화방. 한시바삐 가게 팔고 떠나려는 쇠락한 시장에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을까? 바이러스를 침투시킨 그는 '마을 만들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