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지구상에서 가장 관심을 끈 도시는 러시아 북쪽의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일찍이 대문호 푸쉬킨에 의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 일컬어졌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도시 창건 300주년을 맞아 유럽을 넘어 세계로 창을 활짝 열고 1년 내내 축제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그 중심은 음악축제. 그 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경인방송FM 유혁준 PD가 다녀왔다. 음악계에서 '러시아통'이라 불리는 유PD가 전해주는 생생한 예술도시의 소식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지난 10월 10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글린키 거리에 위치한 마린스키 극장에서는 제221회 시즌 개막 연주회가 열렸다. 마린스키 극장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발레 극장의 아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러시아 최고의 공연장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은 이미 러시아 내에서 2인자가 된 지 오래다.
3개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발레단이 상주하며 1천100명이 넘는 스태프가 쉴새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기업이 바로 마린스키 극장이다. 마린스키 극장은 하루 동안에도 낮에는 발레 '백조의 호수'가, 저녁에는 러시아 작곡가의 그랜드 오페라를 공연할 수 있는 독특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는 현재 세계에서도 거의 유일한 극장 시스템이다.
1847년에 문을 연 마린스키 극장은 러시아 고전 오페라와 발레 대부분의 초연을 담당해왔다.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 글린카의 '이반 수사닌'으로 최초의 막을 올린 뒤, 보로딘의 '이고르 공',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가 차례로 그 웅장한 무대를 선보였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같은 걸작 발레의 초연도 모두 마린스키 극장에서 이뤄졌다.
1893년 10월 28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이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 볼쇼이홀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그리고 9일 뒤 차이코프스키는 고통으로 점철된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10월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래서 더욱 어둡고 침침한지 모른다. 하지만 이때부터 예술활동은 본격적인 기지개를 켠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드라마극장의 시즌이 시작되어 최고의 연극이 일제히 문을 열고, 음악회장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10월 10일 저녁 7시, 마린스키 극장의 2003-2004 시즌 개막은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마제파'로 화려한 막을 올렸다. 담록색과 황금빛이 어우러진 내부장식과 샹들리에가 찬란한 빛을 발하는 가운데 객석은 5층 입석 자리까지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 찼다. 시즌 개막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3명의 장관이 모스크바에서 날아왔다. 특히 9월초 러시아 전역이 놀랐던 마린스키 극장 창고의 화재로 인해 불타버린 30개의 세트 가운데 끼어있었던 '마제파'는 한 달만에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마제파'는 러시아 외에는 잘 상연되지 않는 레퍼토리다. 표트르 대제에게 반란을 일으킨 역사적 인물 '마제파'의 일화에 바탕을 둔 푸쉬킨의 서사시 '폴타바'를 원작으로 작곡된 곡이다. 3막으로 이루어진 이 대작은 아버지 코추베이가 남편인 마제파의 손에 의해 죽게 되고, 끝내 정신이상이 되고만 마리아의 자장가로 공허하게 끝나는 비극이다.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는 다이내믹한 서주를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특유의 공격적이고 찌르는 듯한 도발적인 지휘에 호응하면서 웅대한 화음으로 만들어냈다. 재판관 코추베이의 휘황한 저택이 드러났다.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은 출연진들은 러시아인에 의한 러시아 오페라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마제파 역의 니콜라이 푸틸린, 코추베이 역의 세르게이 알렉사쉬킨은 우렁찬 저음을 유감없이 뿜어냈고 마리아를 열연한 타티아나 파블로프스카야는 비극의 여주인공을 잘 표현해주었다. 특히 3막 시작 전, 유명한 '폴타바 전투' 장면에서 무대 위에 수십명의 나팔수가 등장해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거대한 교향적 장면은 압권이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니 11시를 넘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숙소로 돌아와서도 가라앉지 않는 흥분과 내일의 연주회에 대한 기대로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샜다.
마린스키 극장이 러시아 오페라와 발레의 본산이라면 필하모니아 볼쇼이홀은 콘서트 전용 연주회장으로 세계 정상의 음향을 자랑한다. 이미 1802년에 유럽보다 앞서 러시아에서 필하모니 협회가 결성되었다. 하이든도 참석했던 그 장소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 말리홀이다. 1824년에는 베토벤의 걸작 '장엄미사'가 말리홀에서 세계 초연되었으며, 1839년에는 드디어 필하모니아 볼쇼이홀이 완공되었다. 이곳은 오늘날까지 최고의 연주자만이 설 수 있는 꿈의 무대로 꼽힌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전설적인 지휘자 예프게니 므라빈스키가 무려 50년간을 담금질한 레닌그라드 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다] 1.과거의 영화·미래의 희망을 연주하다
입력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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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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