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같은 천진함과 선미(禪美)가 담긴 독자적인 작품세계로 한국현대미술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장욱진(1918~1990) 화백의 마지막 거처였던 용인시 구성읍 마북리 한옥이 올 가을에 새 단장을 하고 개관한다.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장 화백의 부인 이순경(84·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여사. 장 화백은 문화관광부 지정 2004년 11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돼 있어 고택 개관은 더욱 뜻깊다.
장 화백의 기념관은 덕소 화실이 있던 남양주시가 한때 건립의향을 비치다가 유야무야 됐고, 고향인 충남 연기군 동면에서 미술관을 추진했으나 행정수도 이전으로 땅값이 폭등해 유보된 상태다. 그나마 유족들이 살면서 지켜온 마북리 한옥만이 확실하게 보전되고 있다.
장 화백과 이 여사가 마북리에 온 것은 1986년. 천식이 심한 장 화백을 위해 이 여사가 마련한 작업실이었다. 그는 여기서 자유롭고 파격적인 '초탈의 경지'를 구가하고 생을 마감했다. 이 여사는 요즘 고택에서 조금 떨어진 한 농장에 기거하며 공사를 감독하고 있다.
“100년이 넘은 고택이 많이 기울어서 바로잡고, 5평 남짓한 미니 전시장을 들였습니다. 고택 바로 뒤 붉은벽돌 양옥은 1989년 지었는데, 장 선생의 유품이 그대로 있어요. 장욱진기념관으로 만들어 주말에 개방할 생각입니다. 한옥엔 먹작업을, 양옥에 유화 몇 점을 걸려고 해요. 최근에 사들인 고택 앞 한옥은 세미나나 접대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조선말 경기지역 민가인 고택은 그동안 향토문화재 지정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고 넉달 째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한옥이라 비용이 만만찮아 자녀들의 집을 담보로 얼마전 은행융자를 얻었다. “늙어서 무슨 고생이냐 싶지만 내가 이렇게 해놓으면 나머지 일은 자식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며 “그러잖아도 맏딸이 고택 옆에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여사는 역사학자 이병도(1896~1989·전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박사의 장녀로 1941년 장 화백과 결혼했다.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올라와 유영국 화백의 도움으로 약수동 셋방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한 그는 혜화동 로터리에 '동양서림'을 열어 30년 넘게 운영하면서 남편이 걱정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한편, 엄한 교육으로 1남4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의 강인함과 독실한 신앙은 장 화백에게도 영향을 줬다. '진진묘'는 불경 공부를 하고 있는 이 여사를 그린 작품. 장 화백은 또 아내와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팔상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50년을 함께 한 남편은 술을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좋아해 이 여사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으나, 말년에 한 바닷가에서 장 화백이 “술이 나를 얼마나 도와줬는지 알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무아의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남편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이 여사는 “장 선생은 동시에 2개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물건도 2개 이상 쌓아두지 않았을 정도로 생활 전반이 그의 말대로 '심플'했다”면서 “작고 꾸밈없던 고택이 마치 장 선생처럼 보여 좋았는데 이번에 기와를 올리면서 우람해진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