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경기·인천지역 미술계는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아마추어 미술단체들의 정기전 등으로 인해 전시건수는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전문작가들의 전시나 새로운 담론을 생성하려는 기획전 등은 크게 줄어 경기침체의 여파가 미술계를 움츠리게 한 한해였다.

경기·인천지역 문화단체들이 이같은 침체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내년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경기=경기지역 미술계에선 올초부터 미술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다. 경기지역 75개 미술관·박물관들이 지난 2월 미술계 활성화를 위해 (사)경기도미술관박물관협의회를 구성했다. 또 경기문화재단은 지난 10월 처음으로 경기지역 미술사를 정리하는 책을 발간하면서 유망작가 24명을 선정해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기전아트페어 2004'를 비롯해 '임진강시각예술축제', '판화전' 등을 열기도 했다.

전문작가그룹 중 활발한 활동을 보인 곳은 독립작가연구회와 경기북부지역작가회다. 안성소나무S갤러리와 안양 스톤앤워터 등의 공간을 주축으로 한 독립작가연구회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탐구와 지역간의 소통에 진력했고, 경기북부지역작가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비무장지대 재조망전', '경기미술의 새로운 희망전' 등을 통해 북부지역 주민들의 문화향유 제공에 앞장섰다.

용인 이영미술관의 '박생광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전'은 전국적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경기지역 출신의 조각가인 구본주의 추모기념전이 서울에서 열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작가와 작품의 해외 진출은 활발했다. 화가 황제성(평택) 김기수(화성), 조각가 이재옥(안양), 섬유미술 신영옥(안양) 장혜홍(수원) 등이 올해 해외전을 갖거나 해외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됐다.

이 밖에 올해 이천 샘표공장내 '스페이스갤러리'와 용인 장욱진 고택이 미술관으로 각각 개관한 것을 비롯해 안산(도립미술관), 여주(조각가 권진규 미술관), 용인(백남준미술관) 등이 특성화된 미술관을 건립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인천=올 한해 외형적으로 드러난 미술 관련 전시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스페이스 빔' 학예팀이 조사한 인천에서의 미술전시는 1996년 62건, 1997년 95건에서 올해는 240여건. 평균 한달에 20회의 전시가 열린 셈이다. 단체전(144건)의 경우 기획전이 23건으로 16%(전체로는 11%)에 불과했다. 각종 단체나 동호회, 동문전 등의 성격으로 열린 연례행사는 무려 121건으로 84%에 달했다.

새로운 담론을 생성하려는 의지가 엿보인 기획전이 많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는 “자기 반복적이고 단순 종합 성격을 띤 기획전의 외형만을 빌린 전시가 늘어난 반면 작가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갖고 만들어진 전시는 드물었다”고 평했다.

그러나 인천민미협과 신세계갤러리, 인천민예총, 스페이스 빔 등 일부 단체나 공간을 중심으로 주어진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은 높이 살만하다. 이들은 올 한해 인천 전시분야에서 주된 담론 생산주체로 활약했다. 인천민미협은 '황해미술제' 행사를 중심으로 그동안 '리얼리즘'에 입각한 민족성, 지역성 등의 담론 생산에 꾸준히 노력했다.

7회째를 맞는 올해엔 '공터'라는 주제로 다각적인 공간적 개입을 시도했지만 준비 부족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6·15 우리민족대회 기간에 열린 '남북작가 교류전'도 눈에 띈다.

인천에서 남북 문화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결국 인천에는 전시는 많아졌으나 진정한 만남과 논의가 없고, 외부적인 상황과는 무관하게 작가의 권위만 쌓아가는 행태가 되풀이 돼 답답함을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