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한씨가 환한 얼굴로 즈엄집 2층의 외장작업을 하고 있다. /김종택·jongteak@kyeongin.com
기술이 급진전한 지난 세기는 건축재료의 개발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가장 미래적인 재료의 하나로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흙'. 자연과 인간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재료로 흙만한 것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생태건축에 대한 모색이 국내외에서 활발한 가운데, 김구한(58·낙산도예원·이천시 신둔면 인후1리)씨가 도전장을 던졌다.

그가 오는 4월23일 세계도자비엔날레 개막과 함께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즈엄집'은 전체가 하나의 도자기로 성형(成形)된 도자집(세라믹 캐슬·Ceramic Castle)이다. '즈엄집'이란 이름은 예로부터 흙일을 즈엄일, 흙일하는 사람을 즈엄놈이라 불렀던 데서 따왔다.
 
김씨의 '즈엄집'은 보통사람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이천 설봉공원 세계도자센터 본부 앞 거대한 천막 안에서 작업이 진행중인 즈엄집은 현재 상감토로 십장생을 그리는 외장작업이 마무리단계에 와있다. 동화 속 그림같은 2층집의 높이는 6.4m, 면적은 1층이 5.5평, 2층 3.3평 정도다. 현관과 창문에는 유리문이 달리고 2층 창밖으론 작은 발코니가, 집 뒤쪽에는 온돌을 데울 아궁이가 설치돼 있고 내부엔 2층을 오르내릴 계단도 있다. 외장을 마치면 집 바깥으로 가마를 쌓아올려 건조, 소성한 뒤 가마를 제거한다. 집은 영구설치물로 비엔날레 기간에는 도자집을 체험하는 휴식공간으로 개방될 예정이다.
 
즈엄집은 벽 두께가 무려 30㎝에 달한다. 김씨는 “도자가 이 정도 두께면 시멘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내구성도 영구적”이라고 설명했다. “소성은 1천250~1천280℃로 합니다. 도자기는 건조가 매우 중요한데, 흙 안에 물방울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높은 열을 가하면 폭발해버리죠. 때문에 3㎝ 두께도 6개월 정도 건조시킵니다. 즈엄집의 노하우는 흙의 혼합, 건조 방법, 집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가마 제작입니다. 20년 전부터 도자집을 구상하고 실험에 실험을 거듭해 성공하기까지 15년이 걸렸지요.”
 
특허를 낸 흙의 혼합은 국내산 원토(原土) 8종류와 도자모래(샤모트)를 섞은 점토. 집 제작은 항아리 만드는 수레질 기법과 전통가마 천장을 만드는 망생이 쌓기를 복합적으로 사용한다. 7m 높이의 가마는 흙벽돌 5천장, 내화벽돌 800장, 황토 15t을 사용해 나선형으로 쌓는다. 가마가 완성되면 온도를 200℃ 정도로 유지하는 초벌소성으로 집 벽체 안의 습기를 완전히 제거한 뒤, 가마 내부를 20℃ 이내 편차로 유지하는 고난도의 본소성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자집은 카본층이 두터워 여름철에 바깥 온도가 34.6℃일때 안은 23℃, 겨울철 밖이 -4℃일때 안은 17℃ 정도라고 한다. 그는 이미 도자집을 지은 경험이 있다. “2002년 일본 니가타현의 쯔난초(津南町)에서 전세계 42개국 작가들을 초청, 조각공원을 만드는 대규모 행사가 있었죠. 그때 1층짜리 도자집을 완성했죠. 일본은 첨단소재로서 세라믹을 이미 실용화해 교세라에서 세라믹 칼과 가위가 나왔고, 세라믹 자동차엔진도 개발한 상태입니다.”
 
김씨는 정통 도예인은 아니다. 서울대 국악과 66학번, 다시 미술대 조소과 69학번인 그는 학생운동으로 제적과 복학을 반복해 14년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도피차 일본에 수년간 머무르다가 지난 87년 귀국하면서 이천으로 들어와 도자 연구를 본격화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별 관심이 없어요. 다만 예술은 기존에 대한 저항이고 새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즈엄집이 우리 도자문화의 저력을 보여주고, 생태건축의 현실적 대안이자 도자산업과 건축문화에도 기여했으면 합니다.” 그는 오는 5월께 독일로 가서 이번에는 4층 짜리 즈엄집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