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해체가 우리 사회의 이슈로 대두한 가운데 전통가치인 효(孝)가 이를 타개할 대안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1세기를 위한 효 사상과 가족문화 국제학술회의' 참가차 방한한 오가와 하루히사(小川晴久·64) 동경대 명예교수이자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 특임교수를 만나 21세기 효 사상의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일본내 대표적 사상사 학자이자 철학자인 그는 “효의 본질은 생(生)이며, 생명의 존중이며, 이를 위한 모든 노력이 넓은 의미의 효에 포함된다”면서 “21세기의 효는 가족간 협조라는 혈연을 벗어나 비혈연적인 우애로 확대되고 생명존중 등 지구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폭넓은 의미의 가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시절 북조선을 지지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오가와 교수는 효가 '생의 존중'이라는 점에서 국민주권과 인권을 무시한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의 절대주의적 천황제, 남한의 근대화시기 군부독재, 북한의 전제주의적 지배 등 충효를 통치이념으로 활용한 체제를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 2대에 걸친 전제주의 지배는 이들을 민족의 아버지로 간주하는 가족도덕관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생명과 인권의 유린인 이상 그들의 이른바 인덕정치나 가족도덕관은 근본적으로 기만”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북한 인권상황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오가와 교수는 정약용, 홍대용 등 한국의 실학자와 사상,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한국어도 능숙하다. 지난 93년 북한 강제수용소의 실상을 알게 된 뒤 이듬해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를 결성, 강제수용소 폐지와 탈북자들의 일본 정착을 도와주는 행동하는 지성인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의 경우 사회적으로 효사상은 그다지 논의되지 않으나 '오야고코(親孝行)'는 자주 이야기된다”면서 “다만 효가 우익과 연관성을 갖고 있는 점은 우려된다”는 말했다.

이번 학술회의에 대해서는 “효와 본질적 연관성이 깊지 않은 기독교와 불교 등이 효 운동에 결합한 것은 유교문화권의 특징”이라며 “일본에 돌아가면 좀더 높은 목소리로 효를 알려야겠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송태호)과 성산효도대학원대학교(총장·최성규 목사)가 공동주최하며 15일까지 국내외 학자 2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발표와 토론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