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500만 고지를 사극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제작 이글픽쳐스·시네마제니스)가 지난 17일 점령했다. 개봉 21일만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관객몰이 기세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는 것이다.
#역대 흥행순위 12위, 추월은 시간문제
17일 현재 '왕의 남자'는 한국영화 역대 흥행 순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1천174만명), '실미도'(1천108만명), '친구'(818만명), '웰컴 투 동막골'(800만명), '쉬리'(610만명), '공동경비구역JSA'(600만명), '가문의위기'(566만명), '살인의 추억'(550만명), '조폭마누라'(530만명), '말아톤'(518만명), '가문의 영광'(516만명)에 이어 12번째.
그러나 여전히 전국 350여개의 스크린 수를 유지하고 있고, 배급사 시네마서비스가 설연휴까지도 대대적으로 밀 전망이라 앞으로 200만~300만명이 더 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제로 '왕의 남자'는 젊은 관객뿐 아니라 롱런의 조건인 중장년층 관객을 움직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흥행에 가속도가 붙어 개봉 첫주에 비해 둘째주, 둘째주에 비해 셋째주 주말에 더 많은 관객이 드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영화 취약장르인 사극의 한계 극복
사극은 한국영화의 취약 장르 중 하나다. 코미디나 드라마, 액션 장르에 비해 오락성이 떨어지기 때문이고 신세대의 구미를 당기기에는 낡은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A급 스타 캐스팅이 어렵다.
'왕의 남자'는 그러한 모든 약점을 끌어안고 있다. 감우성과 정진영, 신인 이준기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연산군 시대의 비극적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최근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시대극인데다 스타배우 캐스팅이 안됐다는 이유로 투자 유치에 실패해 좌초위기에 처했던 상황과 비교할 때 별반 나을 것이 없는 것.
그러나 '왕의 남자'는 그러한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하며 보란듯이 대박 사냥에 나섰다. 아울러 이는 이전까지 사극영화 흥행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358만명)의 성과보다 몇배 값지다. '스캔들'은 무엇보다 스타 캐스팅에 성공했고, 오락성이 다분한 성적 코드를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드라마
연산군 시대, 자유를 갈망한 광대들의 찬란한 슬픔은 결코 녹록지 않은 소재다. 그러나 이준익 감독은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연극 '이(爾)'(김태웅 작)의 탄탄한 드라마를 믿었다. 거기에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을 덧붙였다. 그 결과 어려워보이는 영화의 소재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드라마는 가벼운 희극이 결코 줄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을 전해줬다. 이 역시 약점을 시원하게 업어치기한 쾌거.
#연기자들의 고른 호연과 화려한 영상
주·조연을 막론한 연기자들의 고른 호연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주연들 외에도 장항선, 강성연과 유해진, 정석용, 이승훈 등의 연기는 하나하나 빛을 발했다. 반짝스타들의 어설픈 연기에 식상해진 관객들에게 이들의 내공이 느껴지는 연기는 관람의 뿌듯함을 안겨줬다. 여기에 영화는 그 어떤 블록버스터보다도 화려한 영상을 선사했다. 광대들의 현란하고 시원한 놀이 한판은 특히 신세대들에게는 이국적인 즐거움과 다를 바 없다. 이 감독은 연극을 영화로 옮기면서 영상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광대들의 놀이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광대들의 동작과 표정은 거대한 함선을 폭파시키는 것에 뒤지지 않는 파워와 스릴을 안겨주며 화면을 무지개빛으로 물들였다. <연합뉴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