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슨 래퍼 사진전을 다녀와서

얼마전 영국으로 돌아간 앨리슨 래퍼의 방한을 계기로 파주 헤이리 마을 Lee&Park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앨리슨 래퍼 사진전'을 다녀왔다.
그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장애 여성 예술인'. 여성이자 장애인이라는 이중고를 극복해야 했기에 그녀가 걸어온 길도 남들보다 몇배나 힘들었다. 래퍼는 팔다리가 기형인 질병을 안고 태어나 생후 6주만에 친부모에게 버려져 보호시설에서 성장했고, 22세 때 결혼생활을 시작했으나 남편의 폭력으로 9개월만에 파경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픔을 딛고 현재 성공한 화가이자 사진가로 다시 태어났다. 그녀는 “팔이 없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를 기형이라고 여기는 사회 속에서 육체적 정상성과 미의 개념에 물음을 던진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담아내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도전해 왔다.

전시된 래퍼의 사진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구분, 신체의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필자는 오히려 그녀의 작품에서 '장애인의 모성권'에 대한 아우성을 먼저 보았다.
그녀는 아들 패리스를 출산한 후 임신한 여성의 몸과 모성애를 주제로 작품을 펼쳐왔다.

대표작 '보라색 손 연작'을 통해 그녀는 “보라색 손이 나를 도우려는 걸까 아니면 내 아이를 뺏어가려는 걸까”라고 물음을 던진다. 이는 그녀의 경험으로부터 연유한다. 미혼모이자 장애인으로서 패리스를 출산하겠다고 나섰을 때, 주위 사람들은 모두 낙태를 종용했다고 한다.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키울 것이며 혹시나 아이도 장애인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니 그보다는 장애인 여성이 성생활을 하고 임신을 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뜨악한 일이었을 것이다. 며칠전 서울의 모 고등학교 교사가 '팔다리도 없는 앨리슨 래퍼가 어떻게 성관계를 갖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동료 교직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사건도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장애인도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어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본능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들을 무성(無性)적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에게 성이란 생물학적인 성(sex)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정서와 감정을 포함하는 활동으로서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성이 장애인에게는 온갖 형태와 방식으로 억압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들에게 성적 욕구 표현과 결혼이 '이상한 행동’이 되어 버린 것은 임신·출산과 같이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에 있어서도 장애인들에게는 뭔가 거리가 먼 이야기인 것처럼 자격지심을 갖도록 우리 사회가 은연중에 암묵적으로 교육시켜 왔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저출산 문제로 모두 비상이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낙태를 강요하는 등 최소한의 모성권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저출산을 해결한다고 하는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래퍼가 패리스를 더 강인하고 아름답게 잘 키워줬으면 한다. 장애인 역시 훌륭한 어머니가 될 수 있음을,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사회가 장애란 이름으로 막을 수 없다는 '진리'를 래퍼가 온 몸으로 증명해 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어머니' 래퍼의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31)948_9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