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동구 송현동 44번지 일원. 인천인들은 이 곳을 『수도국산』이라 부른다. 수도국산의 옛이름은 만수산(萬壽山) 또는 송림산(松林山)이었다.

산 언덕에 소나무가 많아 불린 이름으로 소나무 언덕이란 의미의 송현(松峴)이란 지명도 송림산에서 비롯됐다. 이 곳엔 또 아카시아와 벚나무가 우거져 있어 꽃피는 철이면 주민들이 즐겨 찾기도 했다.

수도국산이란 명칭은 멀리 구한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들이 인천과 한강의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를 벌인 뒤 1909년 인천지역에 수도물을 공급하면서 부터다.

당시 산 꼭대기에 배수지를 설치, 노량진 수원지에서 원수를 공급받아 수도물을 담아두었는 데, 그를 두고 수도국산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인천에 상수도가 처음 공급되면서 고유의 산이름까지 몰아낸 셈.

수도국산에 본격적으로 동네가 형성된 것은 항구가 열리던 무렵, 일본인들에게 @겨난 주민들이 모여 살면서 부터로 전해진다.

인천의 언론인 故 高逸선생이 쓴 인천석금(仁川昔今)에 따르면 1900년대 초 일본군이 지금의 전동근처에 주둔하면서 주민들을 송현동으로 내@았다고 한다. 이어 6.25전쟁이 터지면서 이북에서 피난내려 온 이들이 대거 몰렸다.

70년대 이후엔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실향민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고 호남·충청지역 사람들이 찾아 뿌리를 내렸다.

이렇듯 「강제개항」과 함께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도국산은 인천인의 고향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주거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고 주민들도 대부분 영세민이어서 나라안에서도 대표적인 「달동네」로 꼽혔을 정도였다.

수도국산 동네에 살았던 姜모씨(71)는 『예전엔 끼니와 잠자리 해결이 가장 큰 문제였으나 소득이 좀 나아진 80년대 초부터는 열악한 주거환경이 심각한 생활불편 문제로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그럴만도 했다.

5만5천여평의 산 비탈에 무려 3천여 가구의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니 말이다. 주민들은 늘 붕괴위험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 폭 1m 가량에 불과한 좁은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손수레조차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지난 88년에는 수도국산에 5일째 물이 나오지 않자 주민들이 줄지어 동네 아래로 물통을 들고 내려가 급수차에서 물을 받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구청에 수도국산을 주제로 그린 작품을 기증한 한국화가 鄭錫元씨(46)는 『도시계획선을 그으면서 도로가 건물을 침범하자 한 주민이 도시계획선을 피해 집을 개조한 모습이 하도 기발해 화폭에 담은 적도 있다』며 『도시가 팽창하면서 부평이나 주안 등 신흥개발지로 빠져나가지 못한 수도국산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수도국산은 이렇듯 서민들의 애환을 곳곳에 담고 있는 동네였다. 몇년전 까지만 해도 조그만 공터에선 고추를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으며, 대문앞에 내놓은 꽃화분은 「달동네」의 운치를 자아내기도 했다.

吳光哲 칼럼집 「장미를 주는 손」에서 저자는 『···골목을 생활무대로 수도국산 사람들은 정답게 살아간다. 다닥다닥 지붕으로 머리를 잇고 골목길을 사랑방 삼아 정리를 나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수도국산은 연극무대로도 등장했다. 지난 90년 수도국산을 소재로 한 인천의 연극 「아버지의 침묵」이 전국연극제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차지해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은 도시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수도국산 「달동네」를 배경으로 도시빈민들의 아픔과 모순을 고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수도국산도 거센 변화의 물결 앞에선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는 2001년까지 불량주택 1천7백80동을 철거하고 아파트 3천여 가구분을 짓기 위한 전국 최대규모의 「송현지구(수도국산) 주거환경개선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수도국산엔 지난해 말부터 철거작업이 진행되면서 주민들이 모두 떠났다. 집을 허문 자리엔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이제 수도국산의 역사는 기록에서나 찾아 보게 됐다.

다행히 이런 역사적 자취를 보존하기 위해 동구청 직원을 중심으로 「수도국산 물품」을 수집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준다.

이들이 철거현장에서 수집한 물품은 그림을 비롯 수도국산 주소를 새긴 문패, 수도국산 지번을 적은 보안등 표시판, 붓글씨로 운치를 낸 문짝 등 50여점에 이른다. 동구는 자료를 더 모아서 「달동네 박물관」이 생기면 전시할 계획.

얼마전 인천에서 사진전시회가 열렸을 때 초대장에 넣었던 인사말은 인천인들에게 다시 한번 수도국산의 「향수」를 잔잔하게 불러일으킨다.

『집집이 풍겨나오는 따뜻한 밥내음이 아릿한 변소내음과 섞여 당신을 향수에 빠지게 하는 곳, 언제 어느 모퉁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