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_52:수준원점〉

인천시 남구 용현동 인하공업전문대학. 바로 옆 인하대학교와 캠퍼스를 같이 쓰는 이 대학에 가면 붉은 벽돌로 만든 특이한 시설물 하나를 만난다. 신입생들은 무엇인 지 잘 모른다. 『캠퍼스를 치장하기 위한 조각품이 아닌가요?』라고 묻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그 의미와 유래를 따져 들어가면 우리가 몰랐던 「또 하나의 인천」이 오롯이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수준원점(水準原點). 높이 3미터 46센치미터, 넓이 2.2평. 여기엔 대체 무엇이 있을 까?

흔히 산의 높이를 해발(海拔)로 부른다. 바다로 부터의 높이란 뜻. 특정 바다를 기준으로 삼아 해발을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바다는 어디를 기준점으로 삼을까? 바로 인천 앞바다다. 이 곳을 기준으로 모든 산의 높이를 잰다. 원점은 쉽게 말해 국토 높이의 기준점이다.

인천시에서 펴내는 「내고장 인천」의 편집팀 유동현씨는 「인천의 재발견」시리즈를 통해 수준원점을 설명하면서, 『인천 앞바다가 있으니까 백두산도 존재한다』고 규정했다. 유씨에 따르면 바닷물의 높이는 밀물과 썰물때 보통 5∼6m, 심할 때는 8∼9m의 차이를 보인다. 해류, 기압, 바람 등을 보태면 그 높이는 수시로 변한다. 그러나 몇 년에 걸쳐 벌인 조사의 평균치를 내면 「해발 0m」인 기준수면을 얻을 수 있다. 이 기준을 육지로 옮겨 놓아 각종 측지학 및 지구물리학의 표본으로 삼도록 한 게 바로 수준원점이다.

지금의 원점은 일제시대인 1914년∼16년에 걸쳐 측정한 결과다. 원점은 초기엔 중구 항동 1가 2번지에 있었다. 지난 78년 12월 당시 건설부 국립지리원장이 현 원점옆에 세운 원점설명표지석의 내용은 이렇다.

『전국 수준점 및 표고는 수준원점을 기준으로 삼는다…(중략)평균 해수면을 산정해 이를 기준으로 수준기점의 높이를 결정해 잠정적으로 국토의 표고 기준치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후 여기 이 원점을 1963년 12월 설치하고 수준기점을 기준으로 정밀 수준측량을 실시하고 원점진고(眞高)를 26.6871m로 결정했다.』

그런데 수준원점이 왜 인하공전으로 오게 됐을까? 인하공과대학 63학번으로 69년부터 인하공전에 교직원으로 몸담고 있는 裵成天씨(53·산학협력총괄)는 지난 88년까지 수준원점을 관리한 「산증인」. 裵씨는 항동에서 이전한 이유에 대해 『도시계획 구역안에 포함된 데다 도로확장, 매립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수준원점은 전국적으로 3개뿐이었지요. 공전 캠퍼스가 해발 20∼30m안팎으로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놓여 있었고, 지반이 단단했기 때문에 적지로 판단한 모양입니다. 수준원점은 1등급으로 항만이나 배수로공사 등에 관련된 모든 측량을 이 곳서 했습니다. 한진건설이 벌인 인천항 도크공사도 여기서 측량했지요. 그러나 대학의 재산은 아니예요. 국립지리원소속이죠.』

裵씨는 이어 『국립지리원이 이곳에 원점을 세운 후 릴레이식으로 높이를 비교해 가며 2m간격으로 전국에 약 5천개의 수준점을 설치했다』며 『측량사들은 수준점에 표척(標尺)을 세우고 수준의(水準儀)로 들여다 보며 주변 지형의 해발고도를 잰다』고 설명했다. 모든 측량의 원류가 바로 인하공전내의 수준원점임을 알 수 있다.

수준원점은 측량사들이 고도계를 구입하면 꼭 들러서 정확한 해발높이를 맞추는 등 「과다한 이용」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그래서 국립지리원은 원점 바로 곁에 3등 수준원점 4개를 만들어 측량용은 이곳을 사용하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원점은 인하공전이 1970년 인하공업전문학교로 개편된 이후 학생들에게 학교를 알리는 「명물」이자, 자랑거리로 등장했다. 공전 기획실 金忠起씨(49·대외협력담당)는 『대학 축제인 「원점대동제」, 「원점가요제」, 「원점마라톤대회」 등 주요 행사의 타이틀로 남아 있는데서 알 수 있듯 대학의 상징물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요즘 신세대 학생들은 이 유래에 대해 무감각하다. 이 대학 학보가 최근 「원점을 당당한 자존심으로 세우자」는 취지의 캠페인성 기획을 선보이고, 원점을 공원화해서 잘 보존해 의미를 되살리자고 외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이 대학 1학년 張景進씨(20·기계설계학과)는 『측량이라는 딱딱한 이미지 때문인지 학생들의 관심이 부족하다』며 『대학의 상징물로서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천은 향토애와 정체성을 결여한 도시란 평가를 흔히 받는다. 그러나 「한국의 지형을 살피는 출발선」이 바로 인천이라는 속깊은 원점의 의미는 새 천년을 앞둔 인천인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하겠다./李旻鍾기자·minjong@kyeongin.com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