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61,인천의료원〉
일제강점후 인천에는 변변한 병원이 없었다. 의료의 불모지였던 셈인데 그 틀을 깬 게 1931년 5월 1일 지금의 인성여고 자리인 중구 송학동 경기도립 인천의원이었다. 당시 인천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었던 건 당연지사. 이 병원이 지금 인천 유일의 공공의료기관인 지방공사 인천의료원(원장·이병화·동구 송림동 318의 1. 이하 의료원)의 모태다. 70년에 가까운 연륜의 의료원 발자취를 더듬는 것은 곧 인천의료사를 이해하는 출발점일 터이다.
의료원은 설립 당시 단층건물 2동의 단촐한 규모였다. 그러다 5년후인 1936년 5월 중구 신흥동 2가 18에 대지 3천평, 연건평 1천8백평의 번듯한 건물을 신축해 둥지를 틀면서 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제에 의한 압제가 풀린 1945년 이후 의료원은 해방공간 혼란의 와중에서 몇 년간 정상적인 운영을 하지 못했다. 1948년 6월 명칭을 경기도립 인천병원으로 바꾼 의료원은 6.25전쟁으로 또 타격을 입었다. 의료원은 지난 98년 발간한 '의료원 소식'을 통해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50년대 중반부터는 다시 도립병원의 역할을 했다. 병상이 1백여개였는데 일반환자와 구호환자의 비율이 반반씩이었다. 구호환자는 대부분 결핵환자였으며, 장기간 수용되어 있었다. 직원수는 36명으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치과 등의 의료진 6명, 간호사 8명, 약사 1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때 입원 병동의 환자들은 병원부속간호학교(후에 민간에 불하된 경기간호전문대학)학생들이 도맡고 있었으며, 병동간호는 3학년생들이 담당했다고 한다.
의료원은 5.16군사쿠데타이후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도립에서 민간위탁으로 경영체제가 바뀐 것. 당시 경기도는 내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영이 부실하다며 도내 7개 도립병원을 민간에 맡겼다. 이후 80년대 초반까지 병원은 민간체제를 유지했다. 당시 병원 직원수는 2백80명, 입원 환자수는 2백여명, 1일 외래환자는 4백여명이었다고 한다. 허가병상수는 3백개.
의료원은 1983년 12월 11일 당시 수탁자가 수십억의 부도를 내 재차 시련을 겪는다. 이 와중에 1백여명의 직원이 전세방을 전전하는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고 당시 병원 관계자들은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1년반 동안이나 의료원은 인천시 의사회가 다시 위탁하는 과도기를 맞는다. 이후 인천시는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1985년 7월 지방공사 인천병원으로 재출발을 시도한다.
60년이 넘는 역사를 갖춘 의료원은 낡고 노후한 병원건물서 더 이상 양질의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1990년부터 현대화 계획을 추진, 1992년 12월 인천교 매립지위에 도약을 다짐하는 첫 삽을 뜨게 된다. 4년반의 공사기간을 거쳐 97년 의료원은 현재의 자리로 신축 이전했다. 대지 4천9백11평, 건물면적 8천4백16평, 4백병상에 21개 진료과를 갖춘 명실상부한 종합병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병원측은 “이전후 관절경, 약구 정제약 자동조제기, 골밀도 측정, 전신전산화 나선식 단층 촬영장치 등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췄다”며 “지난해에는 시민봉사차원에서 무료검진을 실시하고, IMF시대 주민부담을 덜기 위해 진료비 감면도 추진했다”고 소개했다. 지금도 매월 3~4차례씩 복지관 등 사회복지단체를 찾아 무료검진을 해준다. '봉사하는 병원, 주민속의 병원'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 시민 임덕수씨(43·회사원·남동구 간석동)는 “흔히 시립병원을 생각하면 낙후된 시설과 인력 등을 생각했으나 이전후 이미지부터 상당히 격상된 느낌”이라며 “건물과 시설 등이 깔끔해졌다”고 말했다.
의료원은 공공기관인 탓에 인천지역 영세민환자의 1백%, 의료보호환자는 60%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음지로 밀린 이들을 도와준 사례도 부지기수다. 30년간 근무한 정진훈시설관리팀장(53)은 “주로 객지서 온 행려환자를 치료한 후 주머니돈을 털어 여비를 마련해 준 직원이 한 두명이 아니다”며 “자존심을 생각해 꼭 갚으라고 하면서 주는데 정말 갚는다며 다시 찾는 이들을 보면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전에 비하면 확연하게 개선된 의료원이지만 미흡한 점도 있다. 병원측은 “건물에 비해 주변 규모가 좁고, 예산도 충분하지 못해 직원들에게 충분한 후생복지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밝혔다. 이병화원장(60)은 “병원이 주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상실하면 살아 남을 수 없다”며 “의료의 공공성과 지역성을 지켜 2백50만 인천시민을 위한 병원으로 발전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李旻鍾기자·minjong@kyeongin.com
[激動한세기…인천이야기·61] 인천의료원
입력 1999-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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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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