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67):경인지역 초등교육의 산실 인천교육대학교
'경인지역 초등교육의 요람'.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산 59 계양산 자락에 위치한 인천교육대학교는 인천·경기 지역 유일의 초등교사 양성 기관이다. 올해로 개교 54주년을 맞는 인천교대는 해방과 동족상잔의 비극, 그리고 일련의 민주화과정 등 한국 현대사의 거친 풍파를 견뎌내고 이젠 경인지역 초등교육의 산실로 자리잡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인천교대의 역사는 개성사범에서 비롯한다. 해방과 동시에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대중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1946년 전국 10개 사범학교와 함께 개성사범학교가 설립된 것이다. 일제수탈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교육현실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교원양성을 위해 서둘러 각 지방에 사범대학을 설립할 때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창기엔 교원수를 늘리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교사양성 교육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 개성사범은 고등학교 수준의 3년제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학생수가 급속하게 늘어남에 따라 '고급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에게 입학자격을 주는 1년제 단기 교원양성제도(강습과)와 3개월간의 단기 교육을 거쳐 교원으로 임용하는 속성과로 교사의 수급을 맞춰야 했다. 이처럼 교원양성이 졸속으로 이뤄지는 바람에 각 지방과 학교마다 교원들의 자격이 들쭉날쭉하는 등 교육여건이 불안정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1948년 5월 20일 초·중등학교 자격검정규정 공포를 계기로 점차 체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 때야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의 민주·민족 교육의 기틀이 잡히는 듯 했지만, 6.25전쟁으로 다시 한번 위기를 맞게 됐다.
전쟁이 발발하자 개성사범은 부산 괴안동으로 피란해 전시 비상교육체제에 돌입했다. 51년 9월 1일 부산에 '천막교사' 3채를 친 개성사범은 춘천사범과 합쳐 연합사범으로 개교한 후 교원 양성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에 이른다. 전쟁통에도 교육열 만큼은 식지 않은 것이다.
개성사범이 인천사범으로 교명을 바꾼 때는 인천신흥국민학교에 임시 둥지를 튼 1952년 4월. 그리고 20여일이 지나 우선 숭의초등학교에 5채의 '천막교사'를 짓고 이전했다. 하지만 휴전상황으로 접어들면서 개성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학교측은 피란신세에서 벗어나 52년 6월 28일 국립 인천사범으로 교명을 변경, 본격적인 인천시대를 열기에 이르렀다.
인천사범 제1회 졸업생(1953년 3월 16일)은 사범과 72명, 연수과 1백5명, 병설중학교 40명 등 모두 2백17명이었다. 이들은 졸업과 함께 경기도 일원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고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인천사범은 그 해 4월 인천시와 교섭 끝에 남구 숭의동 203 일대 7천2백80평을 인천시로부터 기증받아 처음으로 학교부지를 마련했다. 당시 본관으로 쓰던 동편은 야산으로 되어 있고, 서편엔 미나리밭과 수렁이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직접 들것과 삽을 들고 방과후에 작업을 벌이는 등 온갖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학생들의 정성에 힘입어 마침내 같은 해 12월 25일 목조단층으로 된 신축교사(6개 강의실)를 준공했다. 이어 54년 7월 20일엔 UNKRA(한국의 경제 부흥·재건을 돕기 위해 1950년 국제연합 총회 결의로 창설된 원조기관. 1958년 해체됨) 원조로 시멘트벽돌조의 단충건물(12개 강의실)을 완공했다. 새강의실이 만들어지자 어수선했던 학교의 분위기는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강의를 들으며 '낭만'을 즐기는 여유를 갖기도 했다.
인천사범학교 3회 졸업생으로 현재 인천교대 국어교육과 학과장을 맡고 있는 문광영교수(50) “당시 우리 학교엔 여학생이 많았는데, 인근에 있던 인하공대 학생들과 사랑을 나누는 여학생들이 꽤 있었다”며 “어떤 남학생들은 이를 질투해 학교 정문에서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인하공대 학생들을 데려다 혼내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인천사범 부속 초등학교(후에 인천교대 부속으로 바뀜)가 생긴 것은 1957년 4월 1일. 모두 6학급으로 출발했다. 다른 학교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교사진과 교육운영을 갖추었던 부속초등은 그 후 오랫동안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등 초등교육의 명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지금도 인천교대부속 초등학교는 국립 초등학교로선 인천에서 유일하다.
한편 정부가 초등교육의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해 지난 61년 2월 사범학교를 교육대학으로 승격시킴에 따라 인천사범도 2년제 교육대학으로 개편됐다. 이후 82년엔 학제가 4년으로 늘어나고, 교명도 인천교육대학교로 바꿨다. 아울러 수도권인구 급증과 함께 교세가 날로 확장되면서 캠퍼스 이전 필요성이 대두됐다. 학교측은 이에 따라 계산동에 학교부지를 마련해 공사에 들어갔고, 학생들의 부분이전 반대를 무릅쓰
[激動한세기…인천이야기·67]인천교육대학교
입력 2000-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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