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기의 중종 翼靈君 琦(익령군 기), 즉 王琦(왕기)는 고려말 내외정국이 불안해지며 왕권이 약해지자 도성안에 남아 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고 판단, 개경을 떠난다.

배를 타고 정처없이 바다를 떠돌게 되는 그는 항로와 방향을 모르는데다 파도가 심해 난생 처음 온갖 고생을 하며 구사일생으로 한 섬에 닿게 된다. 그 섬이 바로 영흥도다. 섬에 도착한 그는 이름과 성을 바꾸고 말을 기르는 牧夫(목부)로 변신했다. 그래서 고려가 망한 뒤에도 '환란'을 모면할 수 있었고 그의 자손들도 이 곳에 살게 됐다.

영흥도는 인천에서 뱃길로 30㎞, 인근 대부도에선 30리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처럼 육지에서의 거리가 비교적 가깝고 먹을 것이 풍부한 덕에 영흥도는 고려 삼별초의 항몽기지였으며 6·25 전쟁 당시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영흥도는 경기만 남쪽 남양반도 서쪽인 서신면 끝투리에서 탄도, 선감도 그리고 선재도에 이어 서쪽으로 일렬횡대로 이어진, 좁은 갯골로 이뤄진 맨 끝 섬이다. 옹진군으로 편입되기 이전 남양군에 속해 있었으며 생활권 또한 화성(수원)이었다. 선재도와 측도 등 3 개 유인도와 19개 무인도를 갖고 있는 영흥면은 지난 73년 7월 옹진군으로 편입됐다.

현재 인구 2천8백70명의 영흥도는 산이 낮고 평지가 많아 너른 농경지를 안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옛부터 어업 외에도 농사를 많이 지었으며 농산물도 다른 섬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최근들어 과학영농이 발전하면서 1년 농사를 지으면 3~4년치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비옥한 토지를 자랑한다.

섬 해안은 대체로 굴곡을 이루고 있어 좋은 어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소금을 굽는 염벗 등을 운영했다. 섬 주위엔 간조시 넓은 뻘이 드러나 바지락과 국, 소라, 낙지, 박아지(게) 등 해산류도 풍부해 살기가 매우 좋은 섬이다.

다른 섬엔 대부분 과일이 부족하지만 영흥도엔 토지가 비옥해 과일농사도 잘 된다. 아울러 영흥도의 어선수는 60여척으로 주로 우럭과 놀래미 등을 잡는다.

영흥도 역시 90년대 초반까진 다른 도서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구수가 계속 줄었으나 94~95년 무렵부터 조금씩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IMF한파가 닥친 지난 98년부터는 1백여명의 주민들이 귀향했다. 여기에다 오는 8월이면 대부~선재도간 연육교가 완공되는 데다 내년이면 선재-영흥도간 연육교 또한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주민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영흥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흥도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관심을 갖게 된 때는 지난 75년과 84년. 삼한해로조사단과 국립박물관이 각각 소장골과 용담에서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이 곳에선 빗살무늬토기를 23점이나 수집했고, 섬 서남쪽 업벌마을에선 돌도끼 1점을 확인했다. 선재도 버드리지 새막이 통도리 등지에선 각각 신석기시대 조개더미를 발견하고 빗살무늬토기편 24점을 수집했다.

사매기조개더미에서도 농경도구인 갈돌과 돌화살촉이 발견됐다. 특히 이 곳에서 농경도구로 사용됐던 마제석부와 곡식을 빻는데 사용한 연석봉과 맷돌 등도 발견, 원시농업에 의한 식량 자급도 이뤄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영흥도는 윤택한 곳이었다. 따라서 삼국시대부터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도 잦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과의 해상교통로일 뿐만 아니라 한강유역과 함께 경기만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삼국이 각축전을 벌였던 것이다. 이밖에 영흥도는 고려시대 강화도와 함께 삼별초의 대몽항쟁기지였던 동시에 유배지였다. 다른 섬에 비해 농경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90년대 들어 영흥도는 한국전력공사가 추진하는 화력발전소 건설로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한전은 지난 91년 영흥도 외2리에 화력발전소 건립계획을 세운 후 4년뒤인 지난 95년초부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화력발전소 건설로 인한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주민들과 환경운동연합 등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대투쟁을 벌여 왔다. 최근까지 계속된 갈등 과정에서 모두 10여명의 주민들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한전은 화력발전소 공사를 강행해 오는 2004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영흥도도 내년이면 대부도에서 이어지는 연육교 완공에 따라 사실상 육지로 변한다. 한전이 화력발전소 건립에 따른 주민 보상차원에서 다리를 놓는 것이다.

이처럼 육지화하면 영흥도는 아주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지만 개발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영흥도를 지키기 위해선 군에서 무분별한 개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