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72)-1백6년 역사 지닌 '한국 아동복지의 효시' 해성보육원
인천시 남구 용현 4동 인하대학교 후문 길 건너편에 가면 아담한 정원과 벽돌로 예쁘게 지은 건물을 만난다. 조잘 조잘 떠드는 소리에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눈길을 돌리면 똘망똘망한 눈 빛의 아이들이 천진하게 뛰노는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해성보육원(원장·유정혁수녀). 이 곳은 무려 1백6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 근대 아동복지사업의 효시'다. 인천 토박이들도 그런 사실을 잘 모르지만, 버림받은 아이들을 한 세기 넘게 보살펴온 보육원에는 오늘도 '사랑의 향내'가 은은하다.
프랑스 뮈텔주교(1854~1933)가 1895년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낸 보고서를 보면 해성보육원의 첫 출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엿볼 수 있다.
뮈텔주교는 “한 해전 인천에 도착한 마리 클레망스 수녀와 엠마누엘 수녀가 이 해 가을 4살과 12살난 여자아이 등 5명의 아이들을 성바오로 수녀회 인천본원의 시료소에서 돌봤다”고 썼다. 처음에는 방 하나를 비워 아이들을 보호했으나 점차 늘면서 1896년 1백20평 규모의 원사를 새로 지어 천주교회 인천본당(현재의 답동성당)에서 직접 운영했다고 한다.
이후 1926년 5월 조선총독부 구호령에 따라 가를 얻은 보육원은 서울에 소재한 보육원과 함께 프랑스나 사이공 성영회서 보낸 돈과 국내 독지가들의 도움, 바자회 등으로 어렵사리 꾸려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보육원이 오늘의 기반을 잡을 수 있었던 데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으제니오신부(한국명 전학준)는 1900년부터 1947년까지 답동본당에 봉직하면서 용현동, 영종도, 충남 당진 등지의 농지 20만평을 사들여 기증했다. 사재를 아낌없이 들인 결과 본당건립, 수녀원, 고아원, 병원, 학교, 유치원이 설 수 있었다.
1948년 용현동에 분원을 설치한 보육원은 6.25전쟁의 와중에도 2백여명의 아이들을 수용하며 무척 고생을 했다. 송도로, 덕적도로 피난을 다녔으며 전후인 1958년 분원을 확장해 3동의 원사를 신축했다. 1962년에는 재단법인 인천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으로 편입됐다. 초대 이사장은 맥노튼주교.
1973년 천주교샌뽈수도원유지재단으로 명의가 바뀐 보육원은 1975년 답동의 영아원을 용현동으로 옮기게 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용현동은 중국인들이 채마밭을 일구던 흔적이 남이 있던 곳으로, 보육원에는 부식용 마차가 오가곤 했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1980년대의 보육원은 비약적 발전의 시기로 정리할 수 있다. “한국의 보육시설이 이렇게 훌륭한지 몰랐다”는 외국인들의 탄성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의 투자와 노력 덕분이다.
1983년 6월에는 장애인실, 치료실, 상담실, 미혼모실을 갖춘 신축건물을 준공했다. 이 건물은 아동의 신체발육, 정서안정, 건강관리를 위한 통풍과 채광에 역점을 뒀다. 지금은 이용자가 없어 시설을 철수했지만 1984년~1988년까지는 미혼모의 집을 개설, 전담수녀를 두고 아기와 미혼모의 건강을 돌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1985년 용현동 본당에 분원이 설립되면서 용현동분원은 지금의 이름인 해성보육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87년에는 인천지역서 발생하는 기아나 미아,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을 일정기간 보호, 양육하는 영아일시보호소로도 지정된다.
이에 앞서 82년에는 아동복지 사업 우수시설로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1972년부터 30년가까이 일해온 정돈희총무(61)는 “1987년 4월께 구건물 4동을 철거하고 정원을 조성해 깔끔하면서도 아름다운 환경을 지닌 오늘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보육원은 5천1백여평의 초현대식 규모를 자랑한다.
현재 요보호아동의 보호양육사업, 국내 및 국외입양사업, 미혼모 보호사업, 지체부자유 및 정신박약아 보호양육사업 등을 수행중인 보육원은 지금까지 1만2천여명이 거쳐 갔다고 한다.
6세까지만 보호할 수 있고, 이후 육아시설로 전원하는 바람에 키운 정에 따른 안타까움도 많았다. 그러나 아동복지법이 바뀌면서 늦어도 올 7월부터는 18세까지 보호가 가능해 진다. 80년대 이전만 해도 정부서 부식비와 양육비밖에 지원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운영비, 연료비, 인건비 등을 대주고 있다. 그래도 모자라는 재정은 후원회로 지난 83년 꾸려진 '아가벗'에서 도와준다.
수녀들의 애틋한 보살핌을 받고 성장한 이들이 훗날 혈육을 찾기 위해 들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부모의 소재지가 확인되지 않아 상봉은 정작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20대(代) 원장인 유수녀는 “현재 92명의 영아를 보호하고 있다”며 “부모의 정을 잃은 어린 생명들이 행복한 가정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사명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李旻鍾기자·minjong@kyeongin.com
[激動한세기…인천이야기·72] 해성 보육원
입력 2000-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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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2-2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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