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꽃게잡이 어로한계선을 놓고 남북간에 교전까지 벌어졌던 옹진군 연평도는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조기잡이로 유명했던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기파시(波市)에 대한 내용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연평도는 조기의 황금어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조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가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하지만 최대의 어획고를 자랑했던 1920년대엔 조기를 잡으려고 수천척의 배들이 연평도 앞바다에 모여들고, 또 섬에 수만명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는 기록으로 미뤄 그 양이 얼마나 됐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옹진군향리지에 따르면 매년 4월 하순이면 동지나해에서 서식하던 회귀성 어종인 조기 수억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흑산도를 거쳐 연평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조기는 이 때부터 연평도를 기점으로 황해도 해주와 옹진반도 순위도까지 30-40일간 회유하면서 알을 낳게 된다. 바로 연평어장의 조기 성어기다. 그 무렵 연평 앞바다는 '물반 고기반'일 만큼 온통 조기떼로 넘실댔고 조기잡이 배들은 풍어가를 부르며 귀항했다. 당시 연평도로 모이는 어선수만 무려 3천-4천 척에 달했다. 이들 어선은 잡은 조기를 배에 가득 싣고 섬에 풀어놓은 후 또 다시 바다로 나갔다. 이같은 작업은 파시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이처럼 연평도 앞바다에 조기떼가 몰린데 대해 수산전문가들은 “연평도를 중심으로 한 옹진반도와 해주 연해의 물이 얕아 조기가 알을 낳는데 아주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다 한강을 비롯 임진강, 예성강 등의 강물이 흘러드는 곳으로 부유미생물이 많고 한류와 난류가 겹치면서 산란 조건이 그만이었다고 한다.
조기파시 때 연평도 해안선 일대는 온통 조기저장탱크였고 조기를 말려서 엮어놓은 두름으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조기가 지천인지라 아무도 남의 어획물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섬 전체가 조기로 뒤덮이는 장관을 이뤘던 것이다. 옹진군지를 보면 1924년은 연평도의 조기어업이 전성기를 이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조선수산회에서 펴낸 5월의 어황기록엔 '연평도 방면에 배 1척마다 4만-5만마리의 조기를 적재하고 귀항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나타나 있다.
연평도 조기어업은 다른 지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장관이어서 신문기사에도 종종 등장했다. 실례로 조선신문 1934년자 5월 23일자는 '황해도의 보고(寶庫) 연평도의 어기(漁期)는 환락장(歡樂場)'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하기도 했다.
“어기의 환락장 연평도에 5월 20일경까지 들어온 어선은 6백여척과 발동선 8척으로, 어획고는 1척당 최고 8백원(百圓)에서 최저 2백원까지 평균 5백원이며 조기의 시가는 천마리에 시가 16원으로 추정되어 전년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5월 26일에서 28일까지는 많은 고기가 잡힐 것으로 예상돼 풍어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또 이들 어선 어부를 대상으로 임시로 들어오는 영업자들도 매우 많았다. 그중엔 요리점과 음식점이 가장 않고 술집 여인들도 적지 않았다….”
조기파시가 설 때면 연평도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상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그만 섬에 무려 2만여명이 몰려 북적거렸고 임시 술집과 상점도 각각 1백여호에 이르렀다고 한다. 파시 때면 술집들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뭍에서 들어온 5백여명의 술집 아가씨들로 연평도는 신문기사처럼 '환락의 섬'으로 변했던 것이다.
연평도 출신 조인수 옹진군문화관광과장은(49) “조기 파시 때가 되면 바다와 섬엔 조기와 함께 수많은 어선들이 장관을 연출했다”며 “아울러 상인 등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거래를 하느라 섬 전체가 술렁거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물반 고기반'이라던 연평어장의 조기잡이도 해방 후 6.25전쟁을 겪고 휴전할 무렵부터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남북간에 이른바 '어로한계선'이 그어지면서 조기도 급감했다는 것이다. 이어 1968년을 기점으로 연평어장에선 조기떼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연평도 주민들은 산란을 하기 위해서라도 조기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벌써 30년이 넘도록 조기떼는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러다 지난해 연평도 당섬과 무의도 사이에 쳐놓은 갯벌 안목 근강망에 4백여마리의 조기가 잡혀 어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이들 참조기는 한창 시절 연평도 앞바다에 올라왔던 조기 크기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어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세희 옹진군지 편찬위원(73)은 “연평도 근해에서 조기떼가 사라진 것은 그동안 무분별하게 남획한 결과인 것 같다”며 “산란기를 맞아 올라오는 조기떼를 마구 잡다 보니 고기의 씨가 말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4월이면 예나 지금이나 연평도에도 봄은 찾아오지만, 조기떼는 돌아올
[激動한세기…인천이야기·83]연평도 조기 파시
입력 2000-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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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4-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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