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에게 쌀은 생명과도 같다. 그래서 농민들은 쌀 한톨이라도 더 수확하기 위해 피땀 흘려 농사를 짓는다.
이제는 대도시로 형성되어 있는 부평·계양·김포 일원은 해방 전까지만 해도 드넓은 평야를 이루며 양질의 쌀을 생산하는 곡창지대로 유명했다. 들판 사이로 한강과 그 지천(支川)이 흐르고 있어 농사를 짓기엔 더 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시대엔 이 '김포평야'의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들판 곳곳에 물길을 만들고 수리조합을 결성했다. 지금은 농업기반공사에 흡수된 한강농지개량조합의 전신 부평수리조합도 그렇게 생겨났다. 식민지 침탈수단의 하나로 태동한 셈이다.

1900년대 들어 식량부족으로 대량의 미곡을 수입하던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후 사정이 더욱 악화되면서 소위 '미곡소동'에 직면했다. 그러자 식량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나라 등 식민지로 눈을 돌리게 됐다. 계획적인 증식운동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주요 쌀 수입국이었던 우리나라가 1919년 엄청난 가뭄사태를 겪으며 논·밭 작물에 중대한 타격을 입자, 그 여파는 곧바로 일본에 미쳤다.
일제는 이러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농촌 곳곳에 수리사업을 추진하면서 수리조합 증설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1920년부터 '산미증산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일제는 당시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국의 농업법을 한반도에 이식하는 한편 대규모 농업개발시책을 강력하게 시행함으로써 자국내 모순을 탈출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일제는 산미증산계획을 추진하기에 앞서 이미 1906년 4월 1일 한국정부로 하여금 도지부령 제3호로 수리조합조례를 만들도록 억압하는 등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이어 1917년 제령으로 조선수리조합령과 부령으로 동시행규칙을 각각 발표함으로써 수리조합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기준을 정했다.

그 때 기록에는 “경인철도 소사·부평 양 역 사이 북쪽으로 대규모 논이 발달되어 있으나 마땅한 용수원이 없고 매년 한강의 범람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으므로 수리조합을 설치하기 위한 인가를 신청한다”고 적어놓았다.

부평·김포 일대 일본인 지주들은 1922년 5월 18일 조선총독부의 산미증산계획에 따라 부평수리조합 설치를 신청하고 그 이듬해 4월 9일 인가를 받았다. 부평수리조합 신청서엔 “관계배수를 목적으로 하며 경기도 부천군의 계남면과 부내면(부평구), 계양면(계양구)을 비롯 김포군일대를 사업구역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합은 그 당시 부천군 소사면 심곡리 606-1에 사무실을 두었으며 출납과 기사, 서기, 평의원 등 모두 27명의 인력으로 출발했다. 이렇게 탄생한 부평수리조합은 제 1차 사업으로 1925년 7월부터 1927년 6월까지 재해복구사업을 벌였으며 승수로를 신설하는 등 치수사업에 나섰다. 사상 유례없는 대홍수가 1925년 7월 4차례에 걸쳐 발생, 경기도 일원이 폐허를 방불케 할 정도로 쑥대밭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부평수리조합은 재해복구사업과 함께 엄청난 비용을 들여 관계·치수사업을 벌이게 됐다.

그러나 부평수리조합은 1935년부터 해방까지 다시 시련을 겪는다. 관계·치수사업에 힘입어 일제의 산미증산계획이 성공을 거두면서 곡가가 폭락, 대부분의 수리조합들이 경영난에 빠지게 된 것이다. 또한 처음 9개로 출발한 수리조합이 1933년에는 무려 196개로 급증하면서 부실 수리조합들이 속출했다. 여기에다 1935년부터 시작된 제2차 배수개량사업, 보강사업, 경지정리사업 등은 해방과 함께 전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1943년 11월 13일 한강수리조합으로 명칭을 변경(정식인가는 1949년 11월)하고 조합구역을 대대적으로 확장한 부평수리조합은 6·25 전쟁 이후 새로운 도약기를 맞는다. 한강수리조합은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된 김포군 대곶면 대릉리와 양촌면 일대 320만 정보의 간척지 공유수면매립공사를 1955년 12월말 끝냈다.이 일대에선 처음으로 바다와 갯벌을 메워 농경지로 바꾼 것이다.

한강수리조합은 1962년 다시 한강토지개량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같은 해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 신축사옥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다시 1970년 한강농지개량조합으로 세번 째 간판을 바꿔 단 후 75년 김포시 사우리로 사옥을 옮겨 오늘에 이르렀다. 이후 조합측은 치수사업은 물론 농지확장사업과 농기계화, 품종개량 등을 통해 식량증산을 위해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올해로 설립 77주년을 맞는 부평수리조합은 구조조정에 의해 농림부 산하 농업기반공사로 통·폐합된 상태다. 그러나 아직 침수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부평·계양·김포 일대 치수사업과 21세기 농사환경에 맞는 '토종농업' 육성 사업 등 농민들의 소득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