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야구다. 개항 후 갖가지 서양문물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인천은 국내 야구의 시발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부터 '구도(球都)'로 불릴 만큼 야구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이 컸고, 실력 또한 국내 아마야구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대단했다.

우리나라에 야구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길버트(Gilbert)에 의해서다. 그가 황성기독교청년단 회원들에게 타구(打球) 또는 격구(擊球)라는 이름으로 야구를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이어 1906년 2월 11일 황성기독교청년단과 독일어학교팀 간 한국 최초의 야구경기가 훈련원 마동산에서 개최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인천 야구의 역사는 '웃터골 운동장과 한용단(인천이야기 27편 참조)에서 시작된다. 현 중구 전동 제물포고교 자리에 위치한 웃터골은 일본 강점기 시민의 설움과 애환을 달래주면서 사랑을 받았다. 넓은 평지에다 주위 기슭이 훌륭한 스텐드 구실을 했던 웃터골 운동장에선 일본인들이 2세교육을 위해 1935년 인천공립중학교를 세울 때까지 인천 유일의 체육공원으로 많은 경기들이 열렸다.

당시 한국인들로만 꾸린 인천 최초의 야구팀 한용단과 일본인 쌀거래소 직원들로 구성된 미두취인소 소속 '미신(米信)' 팀과의 야구경기가 유명했다. 한용단은 인천남상업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서 야구가 붐을 이루자 경인선을 이용해 인천에서 서울 양정·배재·중앙·휘문 등의 고등보통학교로 통학하던 한인 학생들이 1920년 만든 친목단체였다. 그 때 활동한 야구인 가운데 배재학당의 함용하·장의식, 휘문고보의 김정식 등은 일본팀에 맞서 전력보강을 위해 스카우트할 정도였다. 1924년 한용단과 미신간의 주말 결승전에선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인해 한용단이 우승을 놓치자 흥분한 응원군중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 2년여동안 인천에서 '야구금지령'이 내렸다고 한다. 야구에 대한 인천시민들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엿볼 수 잇는 대목. 훗날 '구도 인천'의 명성을 떨친 인천고와 동산고 야구부 역시 이러한 토대 위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 중 인천고 야구부의 역사는 일본인 학생들이 주축을 이뤘던 남상업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팀은 1930년대에 '꿈의 제전'으로 불리며 일본에서 열리던 갑자원대회에 조선대표로 출전했을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자랑했다. 인천고 야구는 이후 1945·46년에 각각 창단한 동산중학교와 인천공업중학 야구부와 함께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각종 전국대회에서 치열한 3파전을 벌이기에 이른다.

인천야구의 전성기는 1952년 제33회 전국체전 야구 결승전에서 인천고가 우승을 하면서부터. 당시 고교야구는 전쟁으로 실의에 빠졌던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는데, 인천고 야구부는 화랑대기를 비롯 청룡기, 황금사자기 등 전국대회에서 인천야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인천고는 53년 5회 화랑대기에서 경남중학(6년제·현 경남고)을 결승에서 누른데 이어 그 해 8회 청룡기, 제34회 전국체전에서 우승해 전국대회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54년 9회 청룡기 우승으로 2연패를 이룩한 인천고는 55년 이 대회 3연패를 목전에 두고 결승전에서 동향 팀인 동산고에 2_1로 역전패했다. 동산고는 이 때 그동안 맞수였던 인천고를 누르면서 한국 고교야구를 평정해 나갔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휴식시간에 야구공을 꿰메고 부러진 방망이에 못질을 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팀을 꾸려온 동산고는 이후 10회(56년)와 11회(56년)청룡기를 연거푸 차지하면서 '청룡기 3연패'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인천고는 동산고에 청룡기를 넘겨주었지만 55년 열린 7회 화랑기에서 두번째 우승을 안았다. 이후 양교 야구부는 전국대회인 대통령배를 비롯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와 지방의 전국단위 대회인 대봉기, 무등기, 화랑대기 등에서 여러차례 우승하며 그 명성을 이어 나갔다.

두 학교가 50년대 한국야구사를 주도할 당시 인천고의 서동준(64), 동산고의 신인식(61) 선수를 지나칠 수 없다. 투수였던 서동준은 53년 제8회 청룡기를 시작으로 그 해 10월에 열린 전국체전 등 전국대회 3관왕의 위업을 이루는데 한몫 했으며, 54년 인천고를 졸업한 후 약관의 나이로 제1회 아시아 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투수 신인식은 고교 1학년 때 인천고의 열풍을 잠재우고 동산고가 청룡기 3연패를 거머쥐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56년 제11회 청룡기 결승전 때 막강타선을 자랑하던 중앙고를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세우며 물리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후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인천을 연고로 한 팀이 창단, 인천야구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그러나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에 이어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로 구단이 계속 바뀌다가 지난 3월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