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과 함께 한국 희곡의 쌍두마차로 꼽혔던 극작가 함세덕(1915-1950)의 생가가 최근 동구 화평동에서 확인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9일 동구에 따르면 1915년 5월 23일 조부(祖父) 함선지가 살던 화평동 455번지에서 태어난 함세덕의 생가가 아직도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 희곡사의 효시로 평가받는 함세덕은 출생과 동시에 부친이 목포부청(현 목포시청)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목포로 이주, 목포공립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그러나 1년 뒤 부친이 공직생활을 그만두자 다시 인천으로 이사해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 2학년으로 전학했으며 인천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를 마쳤다.

함세덕은 1947년 월북했다가 1950년 남하하던 중 서울 신촌 부근에서 포탄에 맞아 35세의 나이에 요절했으며, 남한에선 한동안 월북작가란 이유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는 1936년 첫 희곡 '산허구리'를 '조선문학' 2권을 통해 발표했으며, 이듬해엔 인천에서 발행되는 문학잡지 '월미'에 시 '고개'를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까지 대표작 '동승'과 '무의도 기행' 등 총 26편이 함세덕의 작품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편 함세덕의 기와집 생가는 그동안 주인이 열두번이나 바뀌면서 상당 부분 개조됐지만, 아직 안채는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다. /徐晋豪기자·prov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