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가격 안정과 신선한 먹을 거리 제공에 한 몫 하겠습니다.”
 지난 12일 초매를 시작한 삼산농산물도매시장의 부평농산 소속 중도매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김상태씨(32). '122'번 중도매인 모자를 쓰고 그는 매일 새벽 2시 채소 경매장 한켠에서 분주하게 손가락을 놀리며 일과를 시작한다.
 재래시장에서 농산물 소매상을 하다 처음으로 중도매인으로 나선 그는 그동안 도매시장을 다니며 곁눈으로 배운 '경매수지'가 아직 조금은 서툴어 보인다.
 농산물시장의 중도매인은 현지에서 반입되는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연결하는 물류의 중심에 서 있다. 농산물 가격 안정을 꾀하고 소비자들에겐 신선한 먹을 거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운영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삼산농산물도매시장이 빠른 시간 안에 정착하기 위해선 김씨와 같은 중도매상들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그는 벌써 480여명에 이르는 중도매상 사이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통 큰' 업자로 통하고 있다. 하루빨리 도매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웬만하면 산지에서 반입되는 농산물을 경락받기 때문이다. 농부들과 신뢰를 쌓아야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농산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에서다. 그가 주로 취급하는 농산물은 상추와 양채와 같은 엽채류.
 김씨는 신세대 중도매인답게 농산물 시장정보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오께 일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서울 가락동과 안양 농산물시장 등지를 찾아 도매 가격을 일일이 점검하며 다음날 경매 전략을 구상하느라 잠자는 시간을 쪼갠다.
 지난 90년 서울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장미 농사를 짓던 부친이 폭설·폭우 등으로 망하는 바람에 그는 학업도 포기하고 생업에 나서 이젠 중도매인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김씨는 서울 경서농협 조합장이던 부친의 추천으로 농협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지난 97년 부천농축산물 도매시장에서 직접 해병농산을 운영하며 짭짤한 재미를 본 뒤 삼산도매시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는 낮·밤을 바꿔 살아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농산물을 많이 경락받아 제때 처리하고 나면 어느새 피곤함도 싹 가신다고 한다. 김씨는 “내 손에 농부들의 피땀의 결과가 달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 농산회사를 설립하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희동기자·dhl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