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 할머니가 50여년 전 쓴 육아일기를 책으로 펴내 눈길을 끈다. '박정
희 할머니의 육아일기''가 그 것. 박정희(인천시 동구 화평동) 할머니는 해
방공간과 6·25 전쟁의 와중에서 다섯 남매를 낳고 키우면서 겪었던 일들을
그림을 담아 일기로 썼다.
'단기 4278년 서기 1945년 8월 13일 새벽 3시 15분. 나는 모든 엄마가 하듯
이 죽음을 걸고 너를 낳았다. 너의 첫 울음소리는 몹시나도 맑고 뾰족하였
다''. 첫 딸을 낳은 소감을 적은 육아일기 중 한 대목이다.
할머니는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먹고 입는 것 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던 시
절 5남매를 키우면서도 육아일기란 것을 생각했다.
“일제 때 학교에 다니다 보니 한글 쓰는 게 너무 서툴렀어요. 애들과 함
께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육아일기라는 것을 썼지요.”
할머니가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다. 그의 육아일기는 10년간 이어졌
다. 일기마다 내용에 맞는 그림을 빼놓지 않았다. 가끔 사진도 곁들였다.
할머니는 책이 잘 팔려 인세가 늘면 맹인들을 돕겠다고 다짐한다. 수채화
가 이기도 한 박 할머니는 지난 92년엔 한국맹인점자도서관 건립기금을 마
련하기 위해 초등학교때 부터 그려온 작품 중에서 골라 100여점을 내놓기
도 했다. 이 그림들로 서울의 출판기념관에서 전시회를 열어 1억5천만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이듬 해엔 캐나다 토론토에서 맹인 개안수술비 마련을 위한 전시회도 열었
고, 97년에는 인천맹인복지관 건립비에 보태기 위해 그림 80여점을 기증하
기도 했다.
특히 박 할머니는 맹인점자 도서관에 매월 쌀 한 가마니 값인 15만원씩 지
원하고 있다. 벌써 30년이나 됐다. 이에 대해 박 할머니는 “친정 아버지
가 맹인교육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할머니는 바로 한글점자
(일명 훈맹정음)의 창안자인 송암 박두성 선생의 둘째 딸.
박 할머니는 지난 97년에 맹인들을 도운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한 여름 더위에도 선풍기를 틀지 않고 지낼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는 박
할머니는 오는 9월부터는 화도진도서관에서 주부들을 상대로 '육아일기 쓰
기'' 강의를 할 예정이다.
“육아일기 덕분인지 애들이 모두 우등생으로 학교를 마쳤어요. 식구가 20
명이 넘을 정도였지만 육아일기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 때 쓴 육아일
기가 이렇게 귀중한 자료가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