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전 11시께 부평구 부개1동 한국아파트 인근 상가 3층에 자리잡은 국도 체육관에서 우렁찬 기합소리가 울려퍼진다.
50평 가량의 체육관에 들어서니 도복을 입은 한무리의 '무도인'들이 발차기와 '품세'로 기량을 쌓느라 여념이 없다.
젊은 사람 못지 않은 패기를 과시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65~80세의 할머니들. 전국 유일의 '할머니 태권도 시범단'으로 부평풍물대축제와 충주 세계태권도문화축제 등 각종 행사에서 태권도 시범을 통해 '무림계'에 널리 알려진 '할머니 고수'들이다.
“자, 이번엔 약속겨루기 입니다. 두 분씩 마주보고 겨루기 자세를 취하세요. 겨루기 준비!”
이 체육관 관장 윤여호(58)씨의 구령이 떨어지자 마자 이들은 2인 1조가 돼 일사불란하게 태권도 특유의 절도있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어 몸의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한 태권 에어로빅과 가장 힘든 코스인 격파연습이 이어지고 이들의 얼굴엔 구슬땀이 맺힌다.
할머니들에겐 다소 무리인 듯 싶게 여겨지나 할머니들의 표정엔 한결같이 즐거움이 가득하다.
이 체육관에서 할머니들이 태권도를 익히기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부터. 당시 인천시내 각 구청의 노인교실에서 체조강사로 봉사활동을 하던 윤관장이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도장에서 무료 태권도교실을 연 것이 시초다.
“노인들에게 맞게 품세 동작과 '태권 에어로빅'을 개발하면 노인들의 건강증진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품세나 에어로빅을 익히는 자체가 두뇌를 활용하는 창작활동이기 때문에 치매예방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지요.”
윤관장의 말을 입증하듯 이 체육관에 다니는 45명의 할머니들은 너나 없이 일년 내내 잔병치레 없는 건강을 과시한다.
특히 태권도에 대한 할머니들의 열의는 젊은 사람도 혀를 내두를 정도.
월·수·토요일 등 태권도 교실이 열리는 날이면 할머니들은 도복을 둘러메고 부평은 물론 연수구, 남구, 남동구 등 인천지역 각지에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체육관을 찾는다. 출석률은 항상 100%에 육박한다.
“충남 당진에 92살 된 언니가 사는데, 태권도 때문에 몇년간 찾아보지도 못했어. 언니는 보고싶은데 태권도도 빼먹을 수 없고 고민이야….”
태권도 교실이 열리는 날에 맞춰 서구 아들집과 부평구 딸집을 오가며 생활한다는 서계석(80)할머니는 “손자들이 특히 할머니를 자랑스러워 하는 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태권도에 대한 할머니들의 열정을 반영하듯 할머니들의 대부분은 운동경력 3~8년의 유단자다.
이날은 할머니들에게 특히 뜻깊은 날. 할머니들 모두가 지난 21일 국기원에서 열린 승단심사에 통과했고 이날 바로 자랑스런 1단 단증을 받기 때문이다.
윤관장에게서 단증을 받아 든 최난수(73·남구 숭의4동)할머니는 “손주들이 할머니가 태권도를 하는 것을 알고 몇단이냐고 물어볼 때마다 난감했는데 이제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