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TV 경찰드라마 '수사반장'을 보면서 경찰의 꿈을 키우던 아이가 실제로 경찰이 됐다. 그러나 경찰생활 10년 째에 접어든 그의 모습은 중후한 멋을 풍기는 수사반장과는 거리가 멀다. 차량이 방전돼 난처해하는 주민에게 배터리를 충전해 주고 우산이 망가져 빗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우산을 고쳐주는 일 등이 그의 잔잔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날(10월21일)을 맞아 새로운 경찰상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경찰관을 찾았다. 인천계양경찰서 계양파출소에 근무하는 배정호(32)경장이 바로 그다.
배경장의 삶을 들여다 보면 '진정 경찰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을 스스로 터득한 듯 하다.
“경찰에 입문한지 얼마되지 않아 옹진군 덕적면 소야도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어요. 아침 저녁으로 섬지역 주민들의 짐을 선착장에 날라다 주고, 동네에서 상을 당하면 주민들과 상여를 함께 메는 등 주민들의 삶에 파고들었지요.”
계양구 선진구민상 봉사부문 공적조서에 나타난 그의 선행사례만도 수십건. 도로를 무단횡단하던 치매노인을 교통사고 직전에 구해낸 일, 병원을 가야하는데 택시를 잡지 못해 애태우는 장애인을 병원에 데려다준 일, 길잃은 노인을 보호자에게 인계해 준 일 등에서 그의 삶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동사 직전의 할머니를 구해낸 일이다. 효성1동파출소에 근무하던 지난해 2월25일. 이른 새벽 계양구 효성1동 백영아파트 인근을 순찰하중 약수터에서 내려오던 한 등산객이 '산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말을 접한 그는 동료 경찰과 함께 곧바로 산을 이잡듯이 뒤진 끝에 할머니를 구해 낸 것이다.
물론 그도 경찰생활에 염증을 느낀 적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5년전쯤 범인검거실적이 우수해 표창을 받을 즈음이다. 비록 범법자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에 '위해'를 가하면서 승진하는 직업이라고 느꼈을 때 표창장이 휴지처럼 생각됐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 고뇌는 순찰도중 우연히 만난 한 스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해소됐다. 그 후부터 그는 대민 봉사의 최일선인 파출소근무를 고집하고 있다.
“스님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죽을 때 무엇을 가져갈까 생각했다면 좀 거창한가요? 그냥 주민 삶속에 뛰어들어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 살아가는 데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순찰차를 운전하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눈에 띄면 곧바로 차를 세우는 그의 습성은 그가 경찰을 떠나는 날, 아니 그 이후까지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