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 무더기 해고 당시 조립2부에 근무했던 김남환(42)씨는 지난 10개월간의 삶을 돌이켜보다 결국 말을 잇지 못한다.
18일 오후 3시 부평구 청천동 대우자동차 정문 앞에 설치된 10평 남짓한 천막. 지난 2월16일 정리해고된 대우차 노동자들이 지난 12일부터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해고자들은 정리해고자 문제해결 등을 협상 안건으로 내건 노조와 회사측의 노사협상이 공전을 거듭하자 부평공장 유지발전과 고용 및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회사 정문 옆 보도블록위에 자리를 깔았다.
천막 안에선 해고자 10여명이 몇장의 매트리스 위에서 한겨울의 추위를 달래고 있다. 낡은 난로 한대가 천막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지만 난로에서 불길은 보이지 않는다.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 난로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을 때만 켭니다. 식사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조리한 음식을 날라다 먹지요.”
천막을 지키고 있던 최재국(42)씨는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깟 고생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고자들은 1개 조당 10~20명씩 모두 8개조로 나눠 24시간씩 번갈아가면서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1시간씩 진행되는 출근투쟁에 참가한다.
천막에서 농성중인 이들은 저마다 가슴아픈 사연을 가슴에 품고 있다.
송모(38)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24시간 영업하는 계양구 계산동의 한 음식점에서 밤새 일하다 아침 출근투쟁 때 이곳을 찾는다. 지난주에 결혼한 최모(33)씨는 신혼여행 대신 한기 서린 천막안에서 달콤해야 할 신혼의 나날을 대신하고 있다. 결혼 날짜까지 잡아놨다가 해고되는 바람에 결혼식이 무산된 다른 동료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의 신모(59)씨는 회사에 다시 들어간다 하더라도 정년 때문에 1~2년 근무하는 게 고작이지만 '잃어버린 명예'를 찾기 위해 젊은 동료들과 행동을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고생에 비하면 천막안의 생활은 그래도 견딜만한 것 같다.
“먹고 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요. 공장에 일용직으로 취직도 해 보고 안양까지 가서 막노동도 해보고…. 하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은 월평균 70만~100만원이 고작이에요. 가족들의 생계를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해고 후 10개월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해고자 가정에선 퇴직금이 바닥난 상태다. 지난 10월부턴 실업급여도 끊겼다. 해고자들의 부인들도 가내수공업에서부터 식당과 병원 궂은일 등 일거리를 찾아 나선지 오래다.
천막을 나서니 천막 바로 앞 회사 울타리 너머 해고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천막과 컨테이너박스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