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가 영하 3도를 가리키던 14일 밤 11시55분께 동인천역 지하상가. 무리를 지어 술을 마시던 노숙자들이 보따리를 들고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전철이 끊기는 자정께 전철역사로 통하는 지하상가가 문을 닫아 그 전에 잠자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몇몇은 이미 술에 얼큰하게 취한 채 자리를 깔고 누워 상가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상가 경비원 김영환(53)씨는 “전철이 끊기면 전철역과 지하상가로 통하는 지하통로 셔터를 내리는데, 찬바람을 피해 매일 밤 노숙자들이 지하도로 모인다”며 “아침이면 노숙자들이 머물렀던 자리 주변에 빈 소주병과 담배꽁초 등 쓰레기가 나뒹굴어 골치 아프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은 기독교 단체인 '베다니의 집'이 매일 아침 동인천역 앞에서 제공하는 무료 급식을 이용하려고 동인천역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는 게 김씨의 얘기다.
 한모(34)씨는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근근이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겨울철엔 일거리를 찾기 어려워 끼니를 때우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며 “매일 아침과 점심은 무료 급식으로 해결할 수 있어 동인천역 주변 지하도에서 장기 노숙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자정이 넘어서자 동인천역 일대 지하도와 지하상가 곳곳엔 종이박스나 담요 한장으로 몸을 감싸고 잠을 청하는 노숙자가 3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 불이 꺼져 캄캄한 지하도 여기저기에 두세명씩 몸을 맞대거나 혼자 누워 밤을 지새웠다.
 중부경찰서 축현파출소 부소장 박선수(56) 경사는 “기온이 떨어지면 갈곳 없는 노숙자들이 무료 급식장 주변 지하도를 비롯해 폐쇄된 공간으로 몰려 든다”며 “말썽을 피우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어 내버려 둔다”고 말했다.
 동인천역 주변 지하도 노숙자들의 연령층은 30대 중반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한겨울 추위에도 간섭을 받기 싫어 쉼터에 가지 않고 불편을 감수한다.
 3개월가량 쉼터에서 생활했다는 김모(53)씨는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싫어 쉼터를 나왔다”며 “지하도에서 잠을 자는 게 낫지, 쉼터엔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박 경사는 “주변 상인들에게 구걸한 돈으로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행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노숙자들도 많다”며 “재활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들은 쉼터와 노숙자 지원단체에서도 난감해 하는 대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