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쪽빛 바다와 올망졸망 섬들을 앞에 두고 있는 무의도 국사봉. 도시민들의 훌륭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동해안 쪽에 솟아 있는 설악산이나 오대산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장관이다. 경주 토함산의 일출도 빼어나지만 운이 좋아야 구경할 수 있다.
 서해에서 해(太陽)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일몰 때가 제격이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는 눈깜짝하는 사이에 중천에 떠 아쉬움을 주지만 서해에 지는 해는 일출보다 훨씬 더 긴 여운을 남긴다.
 인천 도심과 가까운 곳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보려면 중구 무의도(舞衣島)를 가보라. 무의도 호룡곡산이나 국사봉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동해안의 일출과 전혀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백두대간의 큰 산과 서해 섬의 작은 산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무의도 산에 오르고 나면 그런 생각은 싹 가신다. 석양을 바라보는 애잔한 느낌도 좋지만 산 아래로 푸른 바다가 손에 닿을듯 펼쳐져 있고, 울창한 숲도 자연 그대로여서 그만이다.
무의도엔 2개의 산이 있다. 하나는 호룡곡산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사봉이다. 이들 산은 높지도 험하지도 않다. 무의도 산행의 맛은 짧긴 하지만 2개의 산을 한번에 타는 데 있다. 제대로 산행을 즐기려면 호룡곡산을 넘어 국사봉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연안부두에서 무의행 배를 타고(50여분 소요) 선착장 입구에서 40여분 오르면 호룡곡산 정상에 이른다. 물론 차를 끌고 공항고속도로~영종도를 거쳐 용유도 끝자락에 닿은 후 배를 타고 무의도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일단 호룡곡산을 오른 뒤 하산하는 코스를 밟아 10여분 가다보면 우측에 약수터가 하나 있다. 여기서 잠깐 쉬고 20분쯤 더 내려가면 구름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다시 산을 타면 국사봉이다.
국사봉 정상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 다시 산을 오르기 싫으면 호룡곡산에서 하산하다 왼쪽의 하나개해수욕장으로 빠지거나 오른쪽 개안마을로 내려가는 코스를 잡아도 된다.
해발 244m의 호룡곡산은 호랑이와 용이 서로 맞대결하는 형상을 띠고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국사봉은 해발 230m로 낮지만 무의도 주민들은 나라를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며 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비록 산은 작아도 품고 있는 뜻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지난 3월 말 봄기운이 피어오를 때 일행과 함께 국사봉을 찾았다. 차로 용유도에 도착해 배를 타고 무의도로 건너간 후 국사봉 자락에서부터 산을 탔다. 운동부족 탓인지 곧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정상까지 오를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그러나 하산의 유혹을 뿌리치고 땀을 흘리며 산행을 계속했다.
아직 때가 일러 산의 나무와 꽃들은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산 곳곳엔 분재로 이름난 키작은 소사나무들이 막 새싹을 틔우고 있다. 산은 작지만 숲이 우거져 등산로 이외엔 좀처럼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20분쯤 오르니 산 아래로 굽은 길과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오른쪽엔 1년 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이 한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 소리가 들릴 법도 한데 대형 비행기가 활주로에 소리없이 사뿐히 내려 앉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건너편 영종도와 이 곳 무의도가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한번 쉴만도 한데 일행은 멈추지 않고 중턱까지 단번에 올랐다. 다들 땀에 젖은 채 바위에 걸터앉아 거친 숨을 몰아쉰다. 세상 일에 지칠대로 지친 몸에 갑작스런 산행은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숨을 고르고 나서 보는 바다는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전날까지 심했던 황사도 사라져 하늘은 바다만큼이나 푸르다. 서해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며 바닷내음 실은 바람에 땀을 식힌 후 다시 정상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등산로를 떡하니 가로 막은 바위를 제치고 비탈진 고개에 들어서고 나니 평평한 산길이 짧게 이어졌다. 앞서간 일행은 먼저 국사봉에 올라 한껏 소리를 지른다.
정상에 오른 기분은 언제나 좋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찾는가 보다. 정상에서 큰무리해수욕장과 하나개해수욕장의 모래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돌렸다.
산을 오를 땐 힘들어서 말을 하지 않던 일행은 산을 내려가면서부터는 소풍나온 어린아이들처럼 떠들며 즐거워한다. 내려가는 길에 산불감시를 하던 공익요원들과 마주쳤다. 아직 때가 일러 산행이 금지된 터라 먼저 “취재를 위해 산을 올랐다”는 얘기를 건네고 인사를 나눴다. 산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산을 내려가면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각종 휴양시설을 잘 갖추고 있는 큰무리해수욕장(실미) 쪽으로 가려면 도로를 가로질러 야트막한 산 하나를 더 넘어야 한다. 그런데 이날 “도로를 따라 바닷가를 구경하며 해안을 돌아서 가자”는 말을 듣고 갔다가 '낭패'를 보았다. 가파르고 날카로운 해안의 바위·절벽 틈을 지나 1시간 넘게 걸었는데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려면 1시간 30분은 족히 고생해야 닿을 수 있다. 해안가에서 작은 산들을 다시 타고 길도 없는 숲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혹시 무의도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