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하점면에 위치한 봉천산(奉天山)은 하늘을 받들고 있다는 뜻을 지녔다. 이 산은 양사면과 경계를 이루며 하점면을 품듯이 감싸안고 있다.

강화군에서 하나뿐인 산림욕장을 겸비한 봉천산은 해발 291m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연인과 가족끼리 오르기에 알맞다.

또한 정상에는 고려 때 나라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이 있었고, 조선 중엽에는 봉수대로 사용했던 봉천대가 우뚝 솟아 있다.

봉천대(기념물 제18호)는 4각의 정남향 모양을 이루고 있다. 동서의 길이 9m, 남북의 길이 8.3m, 높이 5.5m로서 아래 부분이 넓고 윗부분이 좁은 사다리꼴의 입방체다. 상단부분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없는 것이 특징.

산 정상에 자연석을 쌓아 조성한 봉천대는 각면에 따라 지면의 높낮이가 다르다. 35단 내외로 쌓았고, 지표면의 수직상에서 25도가량 기울여 안정감이 있고 모서리는 각 면에서 하나씩 장대석을 엇물리게 쌓는 방식을 택했다. 아래단과 가장자리에는 큰 돌을 사용해 붕괴되는 것을 막았다.

봉천대는 고려 때 평장사 하음백 봉천우가 선조의 발상지에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쌓았는데, 제천의식을 거행했다고 전해진다.

봉천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봉천산을 오른 후 장정리로 돌아내려오는 왕복 7㎞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또 하나는 봉천산 정상에서 5층석탑(석조여래입상)으로 하산하는 코스(3.7㎞)로 1시간가량 걸린다.

등산길은 모두 하점면사무소 뒷길을 타고 정상을 통해 갈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5층석탑을 통해 정상을 오르는 방법이 있으나 길이 없고 험해 일반인들이 기피하고 있다.

우선 하점면사무소에 주차한 후 좌측으로 빠지면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 들어서면 하늘을 찌를듯이 쭉쭉 뻗은 소나무숲이 반긴다. 산림욕을 즐기며 그윽한 솔향까지 덤으로 즐기며 산행을 할 수 있다.

잘 정리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양쪽 나무에 산에 대한 각종 유익한 문구의 팻말이 있다. 쉬엄쉬엄 읽으며 10분쯤 오르면 꼴짜기에서 흐르는 식수대가 있어 목을 적시고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양쪽으로 갈라지는 길 중 어느 한곳을 택하든 정상에서 만날 수 있다. 왼쪽은 바위로 이루어진 능선을 따라 오를 수 있는 능선길로 오른쪽의 계곡길보다 덜 힘들다. 오른쪽은 계곡을 따라 오르는 곳으로 가파르다. 계단과 함께 옆으로 잡고 오를 수 있도록 로프를 설치, 부녀자나 어린이들도 오르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인다. 봉천대를 잠시 둘러보고 뒤편으로 돌아가면 등산객들이 쉬어가도록 정자를 설치해 놓았다. 이 곳에서 북쪽을 바라다보면 임진강과 한강 그리고 예성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황해도 연백평야와 개성의 송학산 등 북한의 산야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강화의 곡창지대인 망월벌판이 눈에 들어온다.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녘은 보는 이의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동쪽으로는 김포의 문수산이, 서쪽으로는 강화의 명산 고려산이 우뚝 서 있다. 아울러 서해를 끼고 늘어서 있는 강화도의 교동도 화개산과 삼산면의 해명산이 턱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 멀리로는 서도면의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다.

정상에서 이처럼 '황홀한' 구경을 하고 나면 오르던 길이 아닌 곳으로 하산을 한다. 산을 내려가면 산자락 아래에 또 볼만한 풍경이 기다린다. 하음(지금의 하점) 봉씨의 시조인 옥동자(봉우)를 왕에게 바쳤다는 노파와 닮은 석조여래입상이 그 것. 석조여래입상 옆 쪽에 위치한 봉천사지 오층석탑도 구경할만하다. 하산한 후엔 하음봉씨의 시조인 우가 솟아올랐다는 연못을 볼 수 있는데, 하점면사무소를 출발해 강화읍 방면으로 3㎞쯤 가면 길 오른쪽에 있다. 이 곳에 들러 하음 봉씨의 유래를 알고 다시 1㎞쯤 나가다 왼쪽에 있는 강화지석묘(사적 137호)를 둘러보면 등산과 역사공부를 함께 하는 일석이조의 등산재미를 맛볼 수 있다.

◆ 봉천산 석조여래입상

봉천산 자락에는 하음 봉씨의 원불로 숭상하는 석조여래입상이 있어 눈길을 끈다.

하음 봉씨의 유래는 이렇다. 고려 예종 때 봉천산 아래에 사는 노파가 연못(지금의 하음지)가로 물을 길러갔을 때 하늘에 구름이 끼고 우레 소리가 나더니 수면에 석함이 떠올랐고 석함 뚜껑을 열어보니 옥동자가 들어 있어 이 아이를 왕에게 바쳤고 왕은 봉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봉우는 그 후 커서 재상이 된 후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는데, 이곳 석조여래입상은 노파를 닮았다고 한다.

석불입상은 얇은 판석을 다듬은 주거신광배를 취하고 있으며 거신광 내에는 2조의 굵은 융기선으로 신광과 두광을 구분하고 구분선 내에는 화문(花紋)을 등간격으로 조각했다.

비사실적으로 처리한 머리에는 높고 넓은 육계가 솟아 있다. 얼굴의 이마 폭은 좁고 눈썹선은 양귀에 닿아 있다. 눈은 행인형으로 길게 새겼다.

양 어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