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족산은 세 봉우리가 기이하게도 고리모양으로 서있는데, 솥의 발(정족)처럼 생겼으며 이들 봉우리가 절터를 둘러싸고 있다. 이 곳엔 멀리 단군시대에 성조의 세 아들인 부우, 부로, 부여가 쌓았다는 석성(지금은 삼랑성이라 부름)이 있다. 그리고 산 안에는 유명한 전등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1866년 프랑스 육전대(陸戰隊)를 물리친 병인양요의 명장(名將) 양헌수(梁憲洙) 장군의 승전비(勝戰碑)가 세워져 있다.
정족산은 불은면 덕정산의 동남으로 흘러 한줄기가 남으로 달려가 길상면 서방으로 들어선 후 동이고개를 지나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새벽녘이면 심신을 수련하는 사람들과 정족산성(삼랑성)을 타고 등산을 하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호흡을 고르고 절 안에 있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내려가노라면 힘차게 솟아 오르는 일출의 조화가 장관을 이룬다.
강화군내 큰 산들에 비하면 정족산은 작은 산에 속한다. 조선 고종 3년(1866) 프랑스 함대가 대원군의 천주교도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강화도를 침범(병인양요)해 무기·양식·서적 등을 약탈하자 조정에서는 이경하, 이기조, 이용희, 이원희 등의 용장을 뽑아 서울을 비롯해 양화진, 통진, 광성진, 부평, 제물포 등과 함께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에 배치했다.
그 후 프랑스군이 교동부의 경기수영을 포격하고, 앞서 강화부를 점령한 일대(一隊)가 정족산성을 공략하자 천총 양헌수를 비롯해 사격에 능한 500여명의 포수가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다. 그래서 프랑스군은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채 장년전 등 여러 관아를 불사르고 갑곶진으로 퇴각했다.
정족산을 찾는 이들은 여느 산과 달리 정족산성을 따라 산행을 맛볼 수 있다. 정족산성은 길이가 2천383m에 달하고 자연석으로 축조된 성으로 4개의 성문이 있고 705개에 달하는 활구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온전하게 보존된 활구가 2개뿐이다. 특히 4개의 성문 중 북문은 유일하게 아치형이 아닌 직사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제일 규모가 작다. 넓이가 1m15㎝, 높이는 안쪽 1m15㎝, 바깥쪽 2m12㎝, 길이 5m20㎝다.
정족산 북쪽의 봉우리를 오르면 남쪽으로 멀리 인천이 보이며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풍경이 들어온다. 발아래에는 전등사 경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풍경소리와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북서쪽으로는 화도면의 마리산과 덕포들의 들녘이 보이는가 하면 동쪽으로는 김포의 문수산성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전등사 경내에서 올라오는 향불내음이 등산객들에게 산사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정족산 아래에 위치한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전등사는 원래 진종사(眞宗寺)라 불리다 고려 충렬왕 8년(1282년)에 정화궁주가 이절에 옥등(玉燈)을 하사해 전등사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전등사에는 대웅전(보물 제178호), 약사전(보물 제179호), 명부전, 삼성각, 강설당, 향로전, 대조루, 극락암 등 10여채가 있고 범종(보물 제393호), 팔만대장경의 일부인 묘법연화경(104매), 향토유적 11호인 전족산 가궐지, 향토유적 12호인 선원보각지,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가 있다. 또한 청동수기 1점, 전설이 있는 나녀상, 열매가 열리지 않는 은행나무, 울나무 등 고령의 나무들과 약수가 있다. 일본이 2차대전이 끝나가던 당시 모든 물자가 부족한 상태에 이르자 소나무에 상처를 낸 후 그 곳에서 나오는 송진을 정제 군수용 연료로 사용했다는 일화가 있는 노송이 상처를 드러낸 채 아직도 남아 있어 역사를 함께 알 수 있도록 한다.
◆ 전등사 2가지 볼거리 유래
▲ 참회의 裸女像
전등사 대웅전 네 귀의 추녀 밑에는 나신의 여인이 추녀를 떠받들고 있는 조각이 있는데 여기에는 애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절을 맡아 짓는 도편수(都便手) 동량(棟梁)이 온갖 정성과 재주를 다해 절의 역사(役事)를 하며 여러해동안 집에도 한번 다녀오지 못하고 객고(客苦)의 회포(懷抱)를 달래지 못하며 일을 하던중 어여쁜 여자가 나타나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그러나 도편수는 부정스런 여자의 손길을 외면하고 절을 중수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래도 여자는 계속 유혹을 했고, 결국 마음이 흔들린 도편수가 여자의 정체를 알아보니 절 아래서 술장사를 하는 여자였다.
그 후 주점을 찾아 객고를 풀며 여인과 달콤한 생활을 즐기던 도편수는 여인의 꾐에 빠져 품삯으로 받은 돈을 여인에게 맡겼다.
그런데 얼마 후 도편수가 고달픈 심신을 이끌고 주막을 찾았으나 주막여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달아난 것이다.
도편수는 여인에게 쏟았던 정이 노기로 변해 며칠간 여자를 수소문했으나 끝내 찾을 길이 없었다. 결국 도편수는 '여자는 요물이다, 죄를 받아야 한다'고 뇌까리고 다니다 그 여자로 하여금 전등사 대웅전의 무거운 추녀를 받들고 벌을 받게
[우리동네 우리산 - 정족산] 발아래 전등사 은은한 풍경소리
입력 2002-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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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0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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