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이 넘는 컬러TV를 사달라는데 할말이 없더군요. 심지어 직장을 그만둔 동료가 개업한 식당에 컴퓨터를 사갖고 오라고 하는데도 있어요.”
인천지역과 경기도 일대 대기업 계열회사와 건축회사 등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 S상사 대표 이모(45)씨의 하소연이다.
S상사의 1년 총 매출액은 100억원가량. 마진이 5~7%여서 연간 순이익은 5억~7억여원 정도다. 이중 접대 명목으로 지출되는 돈만 연간 1억원에 이를 정도로 대기업 직원들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자재 단가를 이중으로 계약해 뒷돈을 요구하는가 하면 가전제품이나 고급 골프채를 사달라는 요구까지 받고 있다. 납품 조건으로 계열회사의 주식이나 보험을 들라는 강요를 쉽게 거절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개인 치부형
이 사장은 얼마 전 A기업의 자재 납품을 담당하는 김모(47)부장을 찾았다.
이 사장은 자재 납품건으로 김 부장과 상담을 하던 중 “우리집에 36인치짜리 평면 고화질 TV(시가 300만원 상당)를 갖다 놓으면 거래를 고려해보겠다”는 말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3억원 정도 물량을 팔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결국 포기했다”는 게 이 사장의 얘기. B기업에서 자재 납품을 담당하는 이모(38)대리는 이 사장에게 “2천원짜리 전선의 단가를 2천300원으로 적어 견적서를 내라”고 했다. 이 사장은 “이전에 납품하던 업체에서도 그렇게 했다”는 말을 듣고 견적서를 낸 뒤 1억2천여만원가량의 물품을 납품했다.
물건 대금을 어음으로 지급받은 이 사장은 얼마 후 이 대리로부터 “물건 대금 중 500만원을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물건 값을 시세보다 올려 계산한 뒤 차익을 자신의 용돈으로 달라는 것이었다.
▲과도한 유흥접대 요구
이 사장은 “거래하는 업체만 100여 군데가 넘어 일주일에 2~3차례씩은 저녁식사를 접대한다”며 “강남 고급 술집은 한달에 3~4차례 정도는 가야 거래를 유지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 사장이 갖고 다니는 서울 강남의 고급 룸살롱 마담 명함은 10여개. 주로 납품 담당자들의 단골 술집들이다. 3~4명이 한번 술을 마시고 2차까지 나가면 기본이 400만원 정도 든다는 게 이 사장의 얘기. 심지어 일부 납품 담당자들은 친구까지 불러 술을 마신 뒤 새벽에 전화를 걸어 술값을 계산하러 나오라거나 아예 외상을 지고 이 사장이 계산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주식 등 보험가입 강요
이 사장은 지난 99년 연간 6억원 정도 자재를 납품하는 C기업의 한 전무로부터 계열회사인 C건설회사 주식 3만주를 사달라는 부탁을 받고 2억원어치의 주식을 샀다.
이 후 모기업의 경영부실로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건설회사 주가도 함께 폭락한데다 주식이 감자되는 바람에 현재 5천만원어치밖에 남지 않아 1억5천만원을 손해봤다.
이 사장은 “중간에 주식을 내다 팔려고 했지만 업체 측의 강압으로 주식을 팔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 횡포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해도 너무한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간 얼마 못가서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하청업체에 무리한 납품대가 요구
입력 2002-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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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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