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1시 인천의 대표적인 빈민 마을인 동구 만석동 '괭이부리말'에도 겨울 준비가 한창이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3평 정도 크기의 판자집에 2명의 손자와 살고 있는 정복임(80) 할머니는 다리 뻗기조차 힘든 비좁은 부엌에서 김장용 배추와 무를 다듬고 있었다.
김장일을 도우러 왔다는 이웃주민도 70이 넘은 할머니지만 힘들어 하는 정 할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하며 손놀림을 빨리 했다.
비롯 가난했지만 이웃간 인정만은 세상 어느 부자동네 부럽지 않은 이곳.
지난해 초 국민 필독서로 선정한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소설책의 배경무대로 세상에 소개된 이곳은 120여세대 판자 지붕위엔 세상만큼이나 매서운 겨울을 나기 위해 폐타이어와 폐플라스틱 용기, 폐철근 등이 힘들어 하는 주민들의 어깨 만큼이나 무겁게 지붕을 짓누르고 있다.
이곳은 김장을 해도 특별히 냉장고가 필요없다. 한사람 눕기도 버거운 공간을 냉장고에 뺏길 수도 없겠지만 산곡대기에 매섭게 휘몰아치는 한파가 냉장고 노릇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골목 전체가 냉장고와 주방으로 김치와 된장, 고추장, 소금 등 온갖 반찬과 양념이 든 패트병과 깡통이 늘어서 있다. 골목 전봇대와 벽 곳곳에 붙어있는 '잡부 구함'이란 글귀가 이곳 주민들의 삶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집 창문마다 애처롭게 붙어있는 찢어진 달력 종이는 이들이 겪을 올 겨울 추위를 예고하는 듯하다. 골목 한 편에 자리잡은 '꼬마 양계장'엔 하얀색 닭 다섯마리가 배가 고픈지 철망 사이로 주둥이를 내밀고 연신 '꼬꼬댁'거린다. 맘껏 뛰어 노는 아이들이 없는 것을 제외하곤 소설 속에 나오는 배경 무대와 다른 것이 없었다.
주민의 도움으로 20여포기의 배추 김장을 담근 정 할머니는 “우린 그렇다치고 가난을 대물림해서는 안될텐테. 손주놈들이 죄다 놀고 있어 걱정이야. 빨리 제 밥그릇을 붙들어야 할텐데….”
정 할머니는 거북등처럼 갈라진 손으로 입을 훔치며 한숨을 내쉰다.
“올 겨울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야. 땅속이 가장 편한데 말이야.” 조그만 낚싯배 한 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정달문(77) 할아버지는 겨울철엔 일을 하지 못한다. 날씨도 춥고 몸도 약한데다 겨울철엔 고기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꼼짝없이 정 할아버지는 11월부터 날씨가 풀리는 내년 4월까지 만석동 경로당에서 올해도 이웃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한다.
괭이부리말 어디에서도 풍요와 윤기라는 단어를 떠올릴 순 없다. 다만 몸이 아픈 이웃을 위해 김장을 대신해주는 거친 손길에서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훈훈한 인정을 확인할 수 있다.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현장가보니…
입력 200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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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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