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장기를 팔게 해 주세요.”
지난 13일 오전 인천 부평경찰서 강력반 사무실에서 피해조사를 받던 H(45)씨는 눈물을 흘리며 담당 형사에게 매달렸다.
그는 신장매매를 알선해 주겠다는 조모(37)씨의 꾐에 빠져 신체검사비와 수술비 280만원을 사기당하고도(본보 16일자 19면 보도) '장기를 팔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며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있었다.
택배회사 운전수로 일하다 지난 2001년 3월 교통사고를 낸 뒤 4개월 정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3천만원의 빚을 지게 된 그는 설상가상으로 다리마저 불편한 장애인이 된데다 신용불량자로 낙인까지 찍혀 취직도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빠졌다.
이런 그에게 구세주처럼 눈을 번쩍 뜨게 만든 것은 서울 영등포역 화장실 벽에서 본 '장기매매' 스티커였다. 신장을 팔면 7천만원이란 거액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사기꾼 조씨의 꼬임은 그에겐 절망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이대로라면 당장 하루도 살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오죽 형편이 어려우면 신체의 일부를 팔아서 빚을 갚으려 했겠느냐”고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H씨와 마찬가지로 신장을 팔겠다고 나섰다가 신체검사비와 수술비 280만원만 뜯긴 O(33)씨 역시 경제적 파산자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
그는 지난 6월 유명회사의 빵 대리점을 운영하다 부도를 맞아 도망을 다니던 신세였다.
당장 돈이 필요했던 그는 '장기매매'를 하면 7천800만원이란 거액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조씨의 사탕발림에 쉽게 속아 넘어갔다.
그는 여기저기서 간신히 280만원을 빌려 조씨에게 신체검사비와 수술비조로 건넸지만 장기를 팔기는커녕 털끝만큼도 양심없는 사회의 비정함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고아원에서 자라 노동일을 전전하던 K(26)씨 역시 자신의 장기를 팔려고 마음 먹은 이유가 단지 단칸 셋방을 얻기 위해서였다.
경찰이 압수한 조씨의 수첩에는 자신의 장기를 팔아 이같은 극한 상황을 면하겠다고 나선 60여명의 피해자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들은 모두 회복할 수 없는 절망적인 경제적 파산자로 낙인 찍혀 사회의 그늘 속에 숨어 살고 있는 그런 서민들이었다.
조씨는 경찰에서 “나도 장기매매의 피해자”라며 “다른 사기꾼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60만원을 사기당한 뒤 돈을 돌려받기 위해 뒤를 쫓다 이런 수법을 배웠다”고 진술해 은밀한 장기매매에 또다른 피해자가 속출할 수 있음을 강변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경제적 파산자들이 고통받는 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며 “최근 개인신용불량자가 크게 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야기될 심각한 사회문제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장기매매 사기' 피해 심각 - "남은 건 몸둥이 뿐…" 벼랑끝에 선 서민들
입력 2002-12-17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2-12-17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종료 2024-11-17 종료
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최종 확정된다면 국회의원직을 잃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됩니다. 법원 판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