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몰아치는 깜깜한 바다위.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한줄기 등대의 불빛은 바로 희망의 메시지다.
1903년 6월1일 인천항에 들어오는 선박을 향해 첫불을 밝힌 우리 나라 제1호 등대.
팔미도 등대는 희망의 메신저로서 한 세기 동안 인천 앞바다의 밤하늘에 빛의 궤적을 그려왔다. 헤아릴 수도 없는 비바람과 폭풍우, 뙤약볕과 혹한을 견뎌냈을 터이다.
인천 사람들이 이국만리 하와이로 떠나는 모습에서부터 전 국토를 붉은 물결로 물들였던 월드컵 4강의 기적, 대구 지하철 참사에 이르기까지 때론 기쁘고 때론 슬픈 소식들도 바닷바람에게 전해들었을 것이다.
팔미도 등대의 탄생과정엔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 배어있다.
사실 팔미도 등대는 일제의 술책과 강압에 의한 시대적 산물이다. 조선은 러·일 전쟁을 앞둔 일본의 강권에 못이겨 1902년 인천에 해관등대국을 설치하고 그해 5월부터 팔미도·소월미도·북장자 등대와 백암등표 건설에 들어가 1903년 6월 팔미도 등대를 완공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등대는 조선으로 몰려오는 세계 열강의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 세워진 셈이다.
그러나 팔미도 등대는 이처럼 암울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연출하고야 만다.
인천상륙작전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을 때 바로 팔미도 등대가 10만 병력과 대함대가 무사히 인천에 상륙할 수 있도록 바닷길을 이끈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치열했던 현장을 실감케 하듯 등대 바로 아래 설치한 인천상륙작전 소개 비문에선 아직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는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팔미도 등대는 조만간 바다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새 등대에게 넘겨줘야 한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팔미도 등대 옆에 현대적인 조형미를 갖춘 첨단과학화 등대인 '100주년 기념등대'를 건립중이다.
이 등대는 높이 31m의 등탑과 사무실, 전망대를 갖춘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695㎡ 규모로 내년 2월 준공된다.
이 등대가 팔미도 등대를 대체하는 내년 2월 팔미도는 위성항법보정기준국(DGPS), 항로표지집약관리시스템 등을 구축한 첨단항행지원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예정이다.
----------------------------------------------------------------------
-팔미도등대 연혁-
▲1903.6.1:우리나라 최초로 등대점등(石油 白熱燈)
▲1954.8.29:발동발전기 설치(電氣燈)
▲1963.12.5:전파표지 부호발사(무선표지국)
▲1991.9.13:태양광발전시설(태양전지) 설치
▲1999.8.13:DGPS(위성항법보정시스템)기준국 설치
▲2002.2.4:팔미도등탑 문화재 지정관리(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0호)
※ 신축 등탑 점등과 동시에 현재의 등탑은 2004년 2월 소등 예정
[항만]100주년 맞은 국내 1호등대 '팔미도등대'
입력 2003-05-28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5-28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22 종료
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최종 확정된다면 국회의원직을 잃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됩니다. 법원 판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