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새벽 3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농산물도매시장. 쌀쌀한 날씨 속에서 상인들이 시장 한쪽에 불을 피워 놓고 언 몸을 녹이고 있었다. 넓은 주차장에는 배추, 무, 대파 등을 가득 실은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지만 경매를 기다리는 상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시장 분위기도 예전과 같은 활기를 찾아볼 수 없고 눈에 띄게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춘천에서 5t 화물차에 배추를 싣고 온 송병일(40)씨는 “이틀에 한번 꼴로 인천에 오는데 최근 식당이나 일반 가정의 수요가 많이 줄어 배추값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면서 “운송비와 작업비, 수수료 등을 제하면 남는게 거의 없는데 중국산 절인 배추가 김치공장을 싹쓸이 하면서 판로가 막혀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경매를 앞두고 대파 더미를 꼼꼼히 살피던 중도매인 이지연(63·여)씨는 “IMF때는 유흥업소의 영업이 부진해 청과쪽이 주로 타격을 입었는데 요즘은 과일, 채소 가릴 것 없이 도무지 팔리질 않는다”면서 “시장에 있어보면 '돈이 없어서 채소도 못먹는다'는 말이 정말 실감날 정도”라고 말했다. 좌판을 펴놓고 무를 정리하던 60대 노파는 시황을 묻자 “시장이 아예 죽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사흘전에 개당 600원에 사들인 무를 며칠째 다 팔지 못해 오늘은 350원에 내놨다”며 “35년 동안 채소장사를 하면서 손님이 없어 이렇게 힘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하소연 했다. 이 시장 주변의 포장마차도 4개에서 2개로 줄었다. 밤마다 단속반과 숨바꼭질을 한지 9년이 됐다는 40대 포장마차 주인은 “시장이 침체되면서 단골손님이었던 화물차 기사들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면서 “그나마 예전에는 안주와 술을 시켜먹곤 했는데 요즘은 라면 한그릇 후딱 먹고 가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라고 털어놨다.
인천 구월동 농산물도매시장의 경우 올 3분기 중 배추와 무의 거래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19%, 12%씩 감소했다. 대파와 상추의 거래량도 6%, 19%가 줄었다. 부평구 삼산농산물도매시장도 마찬가지로 이 기간 중 주요 채소의 거래물량이 전년동기 대비 6~35% 정도씩 감소했다.
이처럼 최근 채소 소비가 크게 줄어든 것은 일반 가정에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되고 시민들의 식습관이 바뀐 탓도 있지만 경기침체 장기화로 고깃집 등 시내 식당들이 극심한 영업부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도매시장내 농산물 유통업체 관계자는 “지난 여름에 태풍 피해가 거의 없었고 작황도 좋아 채소 공급량은 많은데 수요가 급감하면서 가격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김장철 특수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