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병원의 안일한 대처가 인명피해를 키웠다.

방화자 백모씨가 두차례 병원을 찾아와 담당의사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등 위험성이 상존해 있었으나 병원측은 강화유리를 설치했다는 이유로 병원 현관에는 경비원 조차 배치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방시설 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인명 피해와 화재를 키웠다는 것이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워낙 순식간이 불이 난데다, 최근 기습한파로 인해 숨진 직원들이 모두 사무실 문을 굳게 닫고 있었던 것도 원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직원들은 불이 난 사실도 모른채 유독가스 연기에 질식해 숨진 것이다.

방화자 백씨가 이날 은혜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께.

이 병원 업무차장 최도철(45)씨는 현관 입구에 1t 차량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차에 다가서 “차를 왜 여기에 주차했느냐, 빼달라”고 하자 백씨는 차에서 내리면서 불을 붙인 소주병을 현관 입구에 서 있던 최 차장에게 던졌다. 너무 놀라 몸을 피했고 현관 입구에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고 최 차장은 전했다.

현관 입구에 불이 나자, 최 차장은 소화기로 불을 끄기 시작했고, 백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차에서 또 다른 소주병 3개를 병원으로 투척했다. 그리고 자신이 타고 온 차량에도 소주병 1개를 던졌다.

병원 1층은 검은 연기와 함께 순식간에 불길이 번졌다. 최 차장은 불이 났다고 소리쳤고, 이 광경을 목격한 일부 환자들은 대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무과 사무실에서 문을 닫고 일을 하던 간호과장과 간호사 등 3명은 화재가 난 사실을 모른채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그리고 영선부 직원 김형기(51)씨도 바로 옆 사무실 입구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이날 방화사건은 어쩌면 예견됐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

방화자 백씨는 최근 한달새 두차례나 병원 담당의사를 찾아가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 경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병원은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의 손에 이끌려 알코올 중독 등으로 병원에 11일간 입원했던 백씨는 퇴원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전력 문제로 부인과 이혼소송이 시작됐다. 이에 앙심을 품은 백씨는 “병원에서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 입원시키는 바람에 부인과 이혼하게 됐다”며 담당의사에게 두차례나 찾아가 항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병원에는 480여명이 입원중이었으며, 화재가 발생한 정신과 병동에는 270여명이 입원중이었다. 그러나 불이 난 사실이 2층과 3층 등에 신속하게 알려지면서 2층 입원환자들은 비상계단으로, 3층 환자들은 옥상으로 안전하게 몸을 피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화재 진압에 나섰던 소방서 관계자는 “화재가 처음 발생한 현관 입구와 인명피해가 컸던 사무실쪽 위치의 거리가 떨어져 있고 사무실 문이 닫혀 있었을 경우 유독가스로 인한 호흡곤란 증세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화재 시간에 비해 피해가 상당히 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