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아라는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고 해양관련 IT 전문가를 꿈꾸는 안현이군.
인천시 동구 화수1동 보라매 보육원에서 12년째 살고 있는 안현이(18·고2)군은 부모 얼굴을 모른다.

안현이라는 이름이 자신의 본명인지 조차 확실하지 않다. 누군가는 원래 이름이 '안현'이었는데 '현이'라고 부르다 보니 '안현이'가 됐다고도 한다.
 
지난 2000년 크리스마스 때는 여자 이름 같아서 빨간색 장갑과 목도리를 선물받은 황당한 기억도 있다. 전국이 올림픽의 열기에 휩싸였던 88년 어느날 남구 혜성보육원 앞에 버려졌다는 게 그가 알고 있는 출생의 전부다.
 
어릴 적 안군은 크리스마스나 설날 같은 명절이 가장 싫었다. 연고가 있는 아이들이 친척친지들의 손을 잡고 보육원을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혼자 눈물을 삼켜야 했다.
 
안군은 “초등학교 때는 나만 부모가 없다는 게 창피했다”며 “주위에서 고아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날 버린 부모님들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조용하고 얌전한 학생이었던 안군이 변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02년 크리스마스 예술제에서 독백극을 하면서부터다. 보육원 부원장 이계순씨는 직접 쓴 희곡 '가룟 유다의 변명'의 공연을 안군에게 맡겼다.
 
수줍음을 많이 탔던 안군은 마지 못해 하게 됐지만 막상 공연날 연극이 진행되면서 자신도 몰랐던 열정을 발견한다. 그 뒤 해양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안군은 변하기 시작했다.
 
고아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도, 먼저 고개 숙이고 피하는 것도 더 이상 안군에게는 필요치 않았다. 그는 “숨기지 않고 내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오히려 사람들도 그 부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이제 고3이 되는 안군은 19일 예정된 해기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학교 컴퓨터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려 한다. 자격증을 따고 해양대학교에 진학해 해양관련 IT전문가가 되는 게 안군의 목표.
 
그는 사회에서 인정받아 동생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수 있는 자랑스런 형이 되고 싶다고 한다.
 
“원생들 모두 우리만의 가정에 속한 소중한 나의 가족들이다”는 안군은 “보육원을 떠나서도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어느덧 의젓한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는 안현이군. 지금까지 좌절과 방황도 많았지만, 이제는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할 거라 다짐한다. 그는 “부모님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며 “내가 잘 되면 언젠가 한번은 그 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