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의 병환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그 대변(大便)의 맛을 볼 수 있을까.

효(孝)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19세기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지극한 효행사례가 인천지역에서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관심을 끈다.
 
김기범 인천시의회 경리팀장은 18일 5대조가 되는 '김정후 효자정려 입안문서' 등 고문서 4점을 인천시에 기탁했다. 이 문서는 1891년 지금의 계양구 노오지동에 사는 김정후의 효행을 기려 예조에서 정려(旌閭, 충신·효자·열녀 등에 대하여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을 세워 기리던 일)를 내린 입안 문서다.
 
이 문서에는 김정후의 애틋한 부모사랑이 절절히 묻어난다. 어릴 때부터 효심이 지극했던 김정후는 어머니가 병환으로 고생하시기를 3년이 되던 해, 한 겨울에 동생과 함께 얼음을 깨고 고기(잉어)를 잡아 봉양했고, 특히 어머니께서 설사병으로 수개월을 고생하자 그 변을 매번 맛을 보아 상태를 살필 정도였단다. 모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3년간 시묘(侍墓)살이 해 그 몰골이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닌 듯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마음에 깊이 새길 만한 대목이다.
 
김정후는 이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몽교관'으로 임명됐다.
 
특히 이번 관련 유물은 계양구의 황어장터 등 지명유래 등 향토사 연구에 중요한 잣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