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경사가 넷포터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경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동부서 주안지구대 도화1치안센터에서 알게 된 한 가출 청소년과의 만남을 글로 써 경찰서 게시판에 올렸다.
며칠 후 다른 넷포터가 이 글을 본 뒤 경찰관과 가출 청소년 사이의 애틋한 사연을 기사로 작성해 국정브리핑에 올렸다.
이 기사는 네티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기사를 쓴 넷포터는 김 경사에게 '기사를 직접 써보겠냐'고 독려했다. 김 경사는 흔쾌히 승낙했다. 경찰관의 활동상을 알릴 기사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 이야기를 기사로 쓴 사람은 유명한 시인이었어요. 그분의 기사를 읽고 다음부터는 내가 직접 기사를 써서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러나 마음 먹은 만큼 기사를 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쓴 기사를 다시 확인하면 또 틀린 부분이 발견됐다. 소재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그는 일상적인 내용으로는 네티즌들의 입맛을 맞추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김 경사는 이에 따라 경찰업무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기사를 쓰기로 결정했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경찰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애절한 민원현장부터 취객을 대하는 고단함까지 솔직하게 경찰상을 표현한 김 경사의 기사는 국정브리핑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네티즌들의 좋은 반응이 잇따랐다. 기사를 보고 이 메일을 보내는 네티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김 경사는 “많은 네티즌들이 경찰을 다시 보게 됐다고 하더라”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찰을 오해하고 불신했는 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내놓은 현장기사보다는 국가정책을 올바로 이끌 수 있는 분석기사를 쓸 참이다.
이를 위해 퇴근시간도 잊은 채 자료수집에 몰두하고 있다. 김 경사는 “모든 국민들이 행복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절대로 펜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1983년 고려대를 졸업한 김 경사는 국내 유명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다 평소 꿈이었던 경찰의 길을 걷기 위해 89년 늦깎이로 경찰에 입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