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이 고향이지만 휴전이 이뤄진 지난 1953년 인천으로 이사를 왔으니 그가 인천 사람이 된 지도 무려 반세기가 넘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신부복을 입은 지도 40년. 살기 좋은 인천을 만들겠다고 인천경실련 공동대표를 맡고 동분서주한 게 벌써 13년이나 됐다. 누구도 세월을 피해갈 수 없듯 오경환(67) 신부에게도 시간은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25일 오후 4시 천주교 인천교구 연수동 성당에서 만난 오 신부는 이 성당 주임신부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나이로 내년이면 70이기에 한국 천주교 율법에 따라 성직을 떠나야 한다. 26일 오전 11시 열리는 은퇴미사는 주임신부로서 그의 마지막 미사. 오 신부는 “어머니와 함께 성당을 다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었다”며 “어릴적부터 꿈꿔왔던 신부도 됐고, 목표했던 길로 쭉 달려왔으니 나름대로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천이란 지역사회를 위해 누구보다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본업인 신부 외 인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 회장과 인천시립대후원회 이사장, 경실련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경인지역 지상파TV 공모 신청을 위해 지난 23일 출범한 'Good TV 컨소시엄'에서도 고문으로 추대돼 직함이 또하나 늘었다. 1990년대 중반 가톨릭대학교 교수를 그만뒀지만 짬짬이 강단에 서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런 활동에 대해 오 신부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보일때 보람을 느낀다”며 “그래도 더 큰 이유는 성격 상 제의가 들어오면 거절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그는 성직 은퇴 뒤에도 시민단체 활동은 계속하겠지만 임기가 만료되는 직함들은 후배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을 생각이다. 대신 종교와 사회학 등 전문분야에 대한 저술활동과 번역작업 등에 열중할 계획이다. 강화군에 있는 인천가톨릭대학에서 신부가 되려는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닦아 온 지식과 경험을 남김없이 전수할 포부도 가지고 있다.

 오 신부는 “지난 1970년대엔 머지 않아 신부가 되려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며 “세상이 많이 변하면서 최근엔 외아들이나 장남들도 신부가 되려는 것을 보면 신기하면서 한편으론 고맙다”고 말했다. 은퇴 뒤 그에겐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오랜 소망이었던 피아노를 배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것이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수줍게 이유를 밝히는 오 신부에게선 따뜻한 보통 사람의 냄새가 배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