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송도국제도시의 행정동 명칭이 '송도동'으로 확정되면서 지역사회에서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던 '송도(松島) 지명의 일제잔재'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일제가 1920년대 후반부터 추진한 '송도유원지 조성 사업'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본국에서 자연스럽게 써오던 '송도(松島)'란 지명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일본인들이 발간한 1930년대 잡지 내용을 토대로 새롭게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동안 수그러들던 송도 명칭 논란이 최근 불거진 인천도호부청사의 '을사오적 박제순 공덕비' 문제와 맞물려 친일잔재 청산 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지역에선 '송도는 왜색(倭色)지명일 뿐만 아니라 청·일, 러·일 전쟁 때 조선을 드나들던 일본의 군함 이름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다', '1946년 인천시 지명위원회에서 왜색지명 일소 차원에서 없앤 송도를 경제자유구역의 법정동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이며, 부산·포항·목포 등지의 송도 지명도 이번 기회에 다시 검증해 바꿔야 한다', '송도는 일제 때 인천부사(인천시장)를 지낸 송도 청(松島 淸)의 이름에서 온 전형적 일제잔재다'라는 등의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송도는 일제잔재란 이런 주장이 계속돼 왔지만 연수구와 인천시는 이 문제와 관련한 입장을 확실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연수구는 올 해 안에 전문가회의를 개최해 송도지명 논란과 관련, 종지부를 찍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특히 역사저술가 이순우씨가 밝힌 바에 따르면 송도유원지 조성사업은 문학산 일대를 국제관광단지로 만들겠다는 당시 인천시의 시책사업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일제는 청량산을 '송도금강(松島金剛)'으로까지 불렀던 사실도 알 수 있다.

송도유원주식회사의 상무였던 후지모토 겐이치가 월간잡지 '경성잡필' 1936년 12월호에서 쓴 '송도유원을 말한다'란 글에는 송도유원지 조성이 '관광 인천'을 내세웠던 시책사업으로, 또한 경성(서울)의 유원지로 꾸미려 했던 점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 글의 내용으로만 봐도 송도란 명칭은 송도유원지 조성사업을 맡았던 송도유원주식회사의 이름에서 연유했을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희환 인하대 강사는 “시와 연수구는 하루 속히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일제가 심어 놓은 '송도'란 언어의 쇠말뚝을 뽑아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