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부두 옆에 하릴 없이 앉아있던 김모(60·여)씨는 “예전엔 이곳에서 강화도와 영종도까지 운항하는 배들이 있어 부두가 항상 북적북적했었다”며 “젊은사람들이 모두 떠나 이젠 늙은이들만 그득하지만 설에 찾아올 자식들과 손자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개항 뒤 삶의 자리를 빼앗긴 철거민들이 갯벌을 메우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괭이부리말은 6·25 전쟁 당시 이북 피란민들이 만석부두에 대거 상륙하면서 인천지역 빈민촌의 대명사가 됐다. 이후 공장들이 들어서고, 만석주공아파트가 세워지며 현재는 만석부두로 이어지는 길 양 옆으로 약 100가구의 쪽방들이 남아 마을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유모(47)씨는 “어릴적엔 동네 친구들과 바다에서 소라와 전복 등을 잡으며 놀곤 했는데 이젠 바다가 아니라 완전 똥물”이라면서도 “이번 설엔 옛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소주라도 한잔 기울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괭이부리말에선 마구 올라간 2층과 옥상을 오르내리기 위해서인듯 유난히 사다리가 눈에 많이 띄었다. 판자를 얼기설기 덧대 만든 벽과 창고, 굴껍질푸대 등이 한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용화장실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낯선 풍경. 동네는 허술했지만 살짝 열린 문틈으로 가래떡을 썰며 설 맞이 준비를 하는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점포를 운영하는 한 주민은 “몇년 전만 해도 책을 읽고 물어물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이제는 아이들도 별로 없고, 솔직히 소설에서 그려진 모습은 전설”이라며 “그래도 이집저집 설날 아침에 차례 올릴 준비를 하느라 나름대로 분주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오후 6시10분.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쪽방들에 하나둘씩 불이 켜졌다. 총총걸음으로 집을 찾아 들어가는 사람들의 손에는 설 제수용품으로 보이는 커다란 봉지들이 들려 있었다. 괭이부리말은 소설 속 그때 쯤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모습으로 올해도 설을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