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파키스탄 출신 남편과 다문화가정을 꾸린 김모(31·여)씨는 퇴근 후 다시 일터로 나서는 남편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학원에서 영어회화를 강의하면서 월평균 150만원 가량의 수입을 올리지만 이것 저것 지출이 많다 보니 생활이 어렵다.

 그나마 오후 1시에 출근해 저녁 7시 정도면 퇴근하는 시간적 여유(?) 덕분에 개인강습 등 '투잡스'가 가능해 한숨을 돌리고 있다. 김씨는 “(나도)직장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2살배기 아들의 양육 때문에 집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가정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2000년 다문화가정을 꾸린 고모(30·여)씨의 남편(파키스탄 출신)은 이른바 3D업종에 다니고 있다. 고씨 남편이 근무하는 곳은 휴대전화 표면처리 공장. 하루종일 쇳가루를 마신 대가는 고작 100만원. 같은 공장에 다니는 한국인 근로자는 근무연수가 늘어나면 자동으로 승진하거나 월급이 올라간다.

 하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한 고씨 남편 만큼은 예외다. 고씨는 그 이유가 피부색에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병원으로부터 위암 말기란 '청천벽력' 같은 판정을 받은 A(35·여)씨는 파키스탄 출신 남편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

 매달 100만원도 안되는 '들쭉날쭉'한 금액이 담긴 월급봉투를 내밀며 미안해 하는 남편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다문화가정의 가장 큰 고통은 '빈곤'. 대부분의 가장들이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탓에 월평균 100만원 가량이 총수입이다.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 가장들 역시 경험과 자본 부족 등으로 인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제조업체에 근무할 때보다 수입이 적은 경우도 다반사다. 고씨의 남편처럼 한국 국적 취득여부는 이들이 직업을 선택하거나 급여 수준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한국으로 건너오기 전 대학교육 이상의 고학력자였다는 사실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동등한 한국인이지만 아직은 높은 문화적 장벽을 허물어 뜨리지 못하고 있거나, 특히 언어라는 거대한 장애물에 가로막혀 직업선택의 폭도 좁은 게 현실이다.

 직업 교육 등을 통해 비교적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종으로 옮기려고 해도 원활치 못한 의사소통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 또는 인천시 차원에서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 과정 개설 등 지원과 배려가 절실하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하종심 상담팀장은 “기초생활수급자 수준도 못되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부모세대의 빈곤은 2세대에게 대물림 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사회의 구조인 만큼 다문화가정의 가장들도 고소득 업종으로 전직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 과정의 개선 등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