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高宗)이 국호를「대한제국」으로 바꾼 해가 1897년이었다.「왕국」이「제국」이 되었으니 이름으로 보면 발전이었다. 국민소득 1만 달러의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실은 속 빈 강정이었다.

국고가 바닥나 마치「IMF(국제통화기금)」와 같았다. 세원(稅源)이 없어 황실에서는 벼슬을 팔아 국고를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매관매작(賣官賣爵)이란 악습이 생긴 것이다.

기생 고부댁은 고향인 고부에서 아전과 하룻밤을 지내고 속량(粟良·관기에서 해방해 줌)이 되었고, 김천의 재산가에게 같은 수법으로 접근해서 부자가 될 만큼 수완이 좋았다.

그녀는 먹고 노는 기둥서방 이용교(李容敎)에게 창령의 수령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엄비(嚴妃)에게 놀랄 정도의 뇌물을 바치고 벼슬을 산 것이다.

그러나 이용교는 토색질을 일삼았고, 고부댁을 배신했다. 기생 고부댁의「뇌물과 허망한 사랑」은, 촉석루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 의기 논개(論介)의「애국적 희생」과 너무 대조적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남성 우위 시대에 할거하거나, 아니면 큰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까닭일까.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아내가 집안과 나를 망치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간 뒤에 어느 시골 기차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82세. 그의 죽음은 아내 소피아를 더욱「악처」로 명성 날리게 했다. 그러나 소피아의 일기를 보면 그녀는 악처가 아닌 것 같다. 그녀의 일기장엔『남편은 나를 체계적으로 살해하고 있다.

그의 삶 어떤 부분에도 나를 참여시켜 주지 않는다. 나는 몹시 괴롭다. 이따금 광기 어린 절망이 나를 사로잡는다』고 적혀 있다.

「악처 제 1호」로 알려진 크산티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다. 그녀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엔 얼굴에 물을 치뜨리거나 식탁을 뒤엎었다고 한다. 그녀는 일기장이 없어 정말 악처인지 알 길이 없다.

남편은 외로운 아내를 위로하고, 아내는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이해하며, 특히 앞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이야기들이다.

중국의 왕조 말기엔 항상 얼굴이 반듯하고 사치하며 방탕한 여인들이 왕의 총명을 흐리게 하여 나라를 멸망시키고 있다.

주(周)나라의 포사(褒似)라는 후궁과 오(吳)의 서시(西施), 하(夏)의 매희(妹喜), 은(殷)의 달기(달己)는 모두 얼굴값을 한 여인들이었다. 오 나라의 왕 부차(夫差)의 첩 서시는 방탕했다.

부차는 그녀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월(越)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서시는 그 뒤에 남편의 부하와 더불어 일생을 마쳤다고도 하고, 백성들의 손에 죽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최근에 있었던 고위 관리 부인들의「고급 옷」사건도 겸허하지 못해 빚어진 것이고, 임창열(林昌列) 경기도지사의 부인 주혜란(朱惠蘭)씨의 거액 뇌물 수수 사건도 마찬가지다.

부인들이 엇나간 행동을 하는 걸 몰랐다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남편들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Shinsm@kyongin.com